소주 제조에 필요한 당류는 극히 소량
“기존 소주도 제로슈거 표시 가능해”
서울 서대문구 대형마트에 ‘제로슈거’ 소주 제품들이 진열돼 있다. 육성연 기자 |
[헤럴드경제=육성연 기자] “제로슈거(무설탕)니까 당연히 열량이 크게 줄지 않나요?”
20대 직장인 정모 씨는 최근 ‘제로슈거’ 소주를 애용하고 있지만, 기존 소주와의 열량 차이를 잘 알지 못한다고 했다.
식음료의 ‘제로(zero·0)’ 열풍으로 마트 주류 코너에선 ‘제로슈거’ 소주의 진열공간이 확대되는 중이다. ‘제로’ 표시를 본 소비자들은 저열량 소주를 기대할 수 있으나, 실상은 좀 다르다. ‘제로슈거’는 ‘제로 칼로리’와 동일한 뜻이 아니다. 소비자가 빠지기 쉬운 ‘은밀한 함정’이다.
헤럴드경제가 국내 주요 ‘제로슈거’ 표시 소주 4개 제품을 조사한 결과, 1병당(360㎖) 평균 열량은 327㎉였다. 밥 한 공기 열량(약 300㎉)과 맞먹는다. 원래 소주 제조 과정에는 당류가 거의 들어가지 않아서다.
희석식 소주는 주로 인공감미료를 사용하고 과당 사용 시에도 극히 소량만 들어간다. 전통주 제조업체 관계자는 “원래 소주를 만들 때는 설탕(당류)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데, 왜 소주에 ‘제로슈거’ 표시를 붙이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콜라처럼 설탕이 다량 들어가지 않아 제로슈거 표시를 따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제로슈거 소주의 열량은 ‘알코올’에서 나온다. 알코올 열량은 g당 7㎉에 달한다. 지방이 9㎉임을 고려하면 고열량 성분이다.
지난 5월 한국소비자원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확인됐다. 국내 5개 종류의 제로슈거 표시 소주와 일반 소주를 비교한 결과, 제로슈거 소주의 열량은 일반 소주보다 100㎖당 2.6~14.7㎉ 적었다. 이마저도 제로슈거 소주의 알코올이 100㎖당 0.5~2.6도 더 낮기 때문에 알코올 열량을 고려하면 차이가 거의 없다는 분석이다.
심지어 일반 소주도 당류가 100㎖당 평균 0.12g으로 낮아 국내 식품표기법상 ‘제로슈거’로 표시(100㎖당 당류 함량 0.5g 미만)할 수 있었다.
‘제로슈거’ 소주 제품에 표기된 열량. 육성연 기자 |
조사에 참여한 노웅비 한국소비자원 시장조사국 대리는 “일반 소주도 당류가 극히 적으나 기존엔 제로슈거 표시를 따로 하지 않았을 뿐”이라며 “제로슈거 소주를 당류가 없는 ‘새로운’ 소주라고 광고하니 많은 소비자들은 열량이 크게 낮을 것으로 오해한다”고 했다. 한국소비자원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2000명 중 68.6%는 제로슈거 소주의 열량이 일반 소주보다 ‘상당히 낮다’고 인식했다. 많은 소비자가 제로 표시를 오인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9일 롯데멤버스가 발표한 성인 200명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제로슈거 소주 구입의 주된 이유는 “열량이 낮아서(40.4%)”, “건강에 도움될 것 같아서(25.9%)”였다. 제로슈거 소주를 마셔본 이들은 71.6%에 달했다.
노웅비 대리는 “사업자에게 표시 개선을 권고하고 유관 부처와도 협의할 예정”이라며 “소비자는 스스로 상품의 영양 정보를 꼼꼼히 살펴보고, 과다섭취도 피해야 한다”고 전했다.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제로슈거 소주라 해도 주류 자체가 열량이 높아 체중 조절엔 도움되지 못한다”며 “더욱이 술은 반주 또는 고열량 안주와 먹게 되므로 체중이 증가하기 쉽다”고 말했다. 이어 “과도한 음주는 암을 비롯한 각종 질환 위험을 높이고 수면 장애, 우울감 증가와도 관련 있다”고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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