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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지원 7억→0원’…서울국제도서전 26일 개막
정부와 출판계 갈등 속 개최 강행
첫 주제 책 선정…'걸리버 여행기'
주빈국 사우디·홍보대사 돌고래
지난해 열린 서울국제도서전 전경. [헤럴드DB]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이번 도서전은 정부 지원이 십원 한 푼 없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초청장을 보냈지만, 해외 출장 일정이 있어 참석이 어렵다는 공문을 받았다.”

올해로 66회째를 맞은 국내 최대 책 축제인 서울국제도서전이 오는 26일 개막한다. 정부와 출판계간 갈등이 봉합되지 않은 채 개최되다 보니 국가보조금을 전혀 받지 못하고 진행되는 이례적 상황이다. 해마다 도서전은 총 40억원의 비용이 드는데 그간 정부가 7억7000만원 정도의 보조금을 지원해왔다.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은 19일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 기자간담회에서 “올해는 대학 때 읽었던 문집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 같은 도서전이 됐다”며 “출협 회원사인 출판사가 낸 기부금과 행사 참가사들이 낸 돈만으로 치러지는 행사”라고 말했다.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열린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이 19일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서울국제도서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김건희 여사가 직접 축사를 하고 박보균 문체부 장관이 참석한 지난해 도서전 개막식과는 완전히 달라질 기류가 점쳐진다. 윤 회장은 “걱정했던 것보다는 참여가 많아서 현재까지는 진행이 순조로운 것 같다”며 “문화를 향유하고 창조하는 주체들이 (정부의) 도움받지 않고 자기 힘으로 문화를 창조적으로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은 오는 26일부터 30일까지 서울 강남구 코엑스 3층에 위치한 C, D홀에서 열린다. 총 19개국 452개(국내 300개사·해외 122개사)의 참가사가 모여 450여개의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지난해(총 30개국 국내 360개사·해외 170개사)와 비교하면, 참가사는 15%가량 줄었다.

주일우 서울국제도서전 대표는 “예산이 없어서 저작권 펠로우십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못했고, 그래서 한국에 초청하지 못한 해외 출판사들이 있다”며 “정부의 지원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출판사, 저자, 독자가 한자리에서 만나는 우리나라의 가장 큰 책 축제로서 의미를 지켜나갈 수 있도록 발전 방향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일우 서울국제도서전 대표가 19일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서울국제도서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올해 도서전 주제는 걸리버 여행기 속 ‘후이늠’이다. 후이늠은 책 속에서 인간이 만들어 내는 비참이 없는 완벽한 세상을 말한다. 특히 올해는 처음으로 주제 도서를 선정, 김연수 소설가가 구수한 우리 입말로 다시 쓰고 강혜숙 작가가 그림을 더해 새롭게 출간한 ‘걸리버 여행기’가 소개된다.

작업을 위해 주 대표는 올해 초 김연수에게 무려 300여년 전에 나온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다시 써줄 수 있느냐는 제안을 했고, 작가는 고민 끝에 작업을 수락하게 됐다. 이날 김연수는 “걸리버 여행기는 지금 우리가 인간에게 절망하는 것보다 스위프트가 당시 훨씬 더 깊이 절망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사실에서 희망이 싹튼다. 고전은 오래전에 마땅히 멸망했을 인간 사회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걸리버 여행기는 18세기 영국 사회를 정치적으로 강하게 풍자한 소설이다. 이후 세계 각국은 자신들의 사정에 맞게 걸리버 여행기를 번안·번역해 책을 냈는데, 한국은 육당 최남선이 맡아 소인국과 대인국을 다룬 1부와 2부를 책으로 묶었다. 김연수는 육당이 번역하지 않은 3부 라퓨타와 4부 후아늠까지 더해 오늘날의 시각에서 걸리버 여행기를 새롭게 썼다. 1726년 영국이 아닌, 1909년 서울을 배경으로 번안한 것이 특징이다.

소설가 김연수가 19일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서울국제도서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특히 원작에서 걸리버가 네덜란드 상선을 타고 ‘한국해’(Sea of Corea)를 지나가는 장면이 있는데, 김연수는 활빈당 무리를 이끌고 홍길동이 떠났다는 남쪽의 섬인 율도국이 이곳에 있다는 점에 착안해 책을 썼다. 그는 “‘걸리버와 홍길동이 만난다면?’이라는 상상을 하게 됐고, 홍길동이 꿈꾼 이상 사회가 걸리버 여행기의 마지막 부분을 새롭게 바꿀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쟁 등 ‘재래식 비참함’도 여전히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상기하고 이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자 했다는 것이다.

올해 도서전 홍보 대사로는 인간이 아닌, 걸리버와 제주 바다로 돌아간 남방큰돌고래 제돌이가 선정됐다. 도서전 얼굴 격인 주빈국은 사우디아라비아다. 주목 받을 만한 국가를 소개하는 스포트라이트 컨트리로는 오만과 노르웨이가 소개된다. 2019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자인 조카 알하르티를 비롯해 미셀 자우너, 데니스 뇌르마르크, 모리 카오루 등 유명 작가들의 북토크도 진행된다.

한편 지난해 8월 문체부가 출협이 주최한 도서전 관련 수익금 정산 문제가 있다며 감사와 수사 의뢰한 이후 문체부와 출판계의 갈등은 1년여 간 이어지고 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출협에 도서전 수익금 약 3억5900만원을 반환하라고 통보했고, 지난 달 출협은 이 자체가 무효라고 보고 행정소송법상 항고를 제기한 상태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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