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프라임솔라 블로그] |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지붕 절반을 태양광 패널로 덮으라니”
주거용 건물 등의 지붕에 태양광 발전기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라는 정책, 황당하고 무리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전세계는 이미 지붕에 태양광 의무화 제도를 도입, 시행 중이다. 보급에 앞장서는 건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이다.
태양광 발전은 이제 호불호의 영역을 떠나 기후변화 시대 글로벌 표준 발전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탈화석연료가 본격화되면서 전력 수요가 치솟고 있어서다. 핵심은 태양광 발전을 위한 부지를 따로 마련하지 않고도 지붕과 같은 도심 내 빈 공간에서 전력을 생산하는 데 있다.
축사 지붕 태양광 [고호솔라 홈페이지] |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에서 지난 4월 발간한 ‘건물 탈탄소를 위한 전략: 주택 지붕 태양광 의무화제도 분석과 제언’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 베를린을 비롯한 9개 주(2023년), 미국 뉴욕(2020년)과 캘리포니아주(2019년), 일본 교토(2022년) 등에서 신축 또는 지붕을 수리하는 경우 태양광 발전을 의무화하는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곳에서 지붕 태양광 의무화 정책이 시행될 예정이다. 일본 도쿄에서 2025년부터 2000㎡ 이상 대형 신축 건축물 또는 2만㎡ 이상 대규모 신축 주택 단지 내 단독 주택에는 태양광을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유럽연합은 2026년부터 주거용뿐 아니라 공공 및 상업 등 모든 건물에 태양광 설치가 의무다.
이처럼 전세계가 태양광 발전을 의무화하는 건 온실가스 배출 없이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라서다. 재생에너지 중에서도 풍력이나 수력 발전 등은 대규모 건설이 뒤따라야 하지만 태양광은 부지 확보와 설치가 비교적 쉽다.
지붕 태양광이 설치된 모습 [호주태양광협회] |
특히 지붕 태양광 발전은 전력 소비는 크지만 생산을 많이 못하는 도시에서 빛을 발한다. 탈화석연료 흐름과 인공지능(AI) 혁명, 데이터센터 급증으로 전력 수요가 높아지고 있어서다. 도시에서 전력자립도를 끌어올리면 먼 곳에서 생산된 전기를 끌어오는 과정에서 송전망 혼잡을 줄일 수 있다.
건물이 소비하는 전력 자체도 많은 편이다. 우리나라 전체 전력 소비 중 가정과 상업, 공공 건물 부문의 비중이 47.6%(2021년 기준)에 달한다. 이 전력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간접)은 1억2700만t으로 국가온실가스배출량의 17.5%를 차지한다.
주택용 태양광 [경남도청 제공] |
이런 상황이지만 국내 태양광 중 건물에 설치된 태양광은 일부에 불과하다. 한국에너지공단(2023년)에 따르면 주거용 건물에 1.9GW, 공공 및 상업용 건물에 1.4GW의 태양광이 설치돼 있다. 이는 전체 태양광 설치 용량(24.4GW)의 13.5%에 해당한다. 반면 EU는 전체 전력 소비의 4분의 1을 지붕 태양광으로 채울 계획이다.
국내에서도 2025년부터 건물에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를 반드시 공급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해외와 비교하면 범위가 좁다. 신재생에너지법에 따른 의무화 대상은 연면적 1000㎡ 이상 공공 건축물로, 민간 건축물은 권고에 그친다. 심지어 국내 건축물 중 연면적이 1000㎡ 이상인 건축물은 6.7%뿐이다.
만약 우리나라도 해외와 같이 지붕 태양광 설치가 의무화된다면 어떨까. 보고서는 2025년부터 신축·재건축·리모델링하는 주거용 건물의 지붕의 절반만 덮어도 태양광이 12.6GW 보급될 것으로 추산한다. 기존 주택으로 대상을 넓히면 28.4GW까지 설치할 수 있다. 이는 산을 깎거나 신규 발전 부지를 따로 마련하지 않아도 태양광 보급 목표의 10%를 충당할 수 있는 규모다.
아파트 단지 앞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
보고서는 주택 지붕 태양광을 의무화하려면 도시 내에서도 전력 소비가 많은 곳과 적은 곳의 불균형을 해결해야 한다고 봤다. 가령 지붕 면적 대비 주민이 많은 아파트와 전력이 남는 단독 및 저층 공동주택이 거래하는 식이다.
또 협동조합이나 특수목적법인(SPC)이 주택 외 건물의 지붕에서 태양광 발전을 하고 주민들은 이를 구독해 사용하는 ‘커뮤니티 태양광’ 등의 비즈니스 모델도 제안했다. 태양광 패널을 구입하지 않고 빌리는 것도 방법이다.
보고서는 “건물에서 필요한 전력을 직접 생산하면 전체 전력 수요를 줄이고 국가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할 수 있다”며 “태양광 발전 설비 수명이 20년 이상이라는 걸 고려하면 건물을 신축·재건축·리모델링하는 때에 지붕에 태양광을 설치하는 게 비용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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