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용 선풍기 [네이버 블로그] |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여름마다 맨날 쓰는 건데…갑자기 고장 난 거에요.”
무더운 여름 필수템이 된 휴대용 선풍기(손풍기). 고장 나면 참 애매하다. 엄청 비싸진 않지만, 그렇다고 그냥 버리자니 아깝다. 뭔가 간단히 고칠 수만 있다면.
매년 반복되는 풍경이다. 겨우내 보관해둔 손풍기를 땀이 날 때쯤 다시 꺼내면, 원인 모를 이유로 작동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거금 몇만 원을 들여 새로 사더라도 다음 계절에 잘 돌아갈 지는 모를 일이다.
비단 손풍기만의 일이 아니다. 사실 일상 생활에서 망가진 가전제품 중 상당수는 배터리 교체 등으로 쉽게 고칠 수 있다. 방법을 모를 뿐이다.
수리한다면, 비용을 아끼는 건 물론 전자 쓰레기도 줄일 수 있다. 최근엔 수리 입문자들을 위한 1일 수업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12일 서울 마포구 '수리상점 곰손'에서 열린 '청소기, 선풍기, 드라이기 분해, 청소, 수리 워크숍'에서 선풍기를 분해하고 있다. 주소현 기자 |
서울 은평구에 사는 김지영 씨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수리상점 곰손’에 아끼던 손풍기를 가져왔다. 몇년 째 사용하던 손풍기를 다시 꺼냈는데 켜지지가 않아서다.
수리상점 곰손의 첫번째 진단은 분해와 청소였다. 성연 곰손지기는 “쌓인 먼지를 닦아내는 등 단순 청소의 문제도 소비자들은 고장이라고 생각해 쓰지 않거나 수리점에 간다”고 설명했다. 최현철 공반장도 “막상 뜯어봤는데 고장 원인을 확인할 수 없어 재조립했는데 저상 작동하는 경우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지영 씨는 나사를 조심스레 풀러 덮개와 날개를 떼어냈다. 손수건으로 먼지를 닦아내고 알게 모르게 전동기에 감겨 있던 머리카락들도 떼어냈다. 재조립 후 시험 작동을 하려는데, 충전을 해도 손풍기에 전혀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12일 서울 마포구 '수리상점 곰손'에서 열린 '청소기, 선풍기, 드라이기 분해, 청소, 수리 워크숍'에서 선풍기를 분해하고 있다. 주소현 기자 |
그 다음 단계는 배터리를 확인하는 거다. 손잡이의 이음새가 부러지지 않도록 지렛대를 끼어 조심히 열어본 결과, 내부에는 파란 원통형의 배터리가 들어있었다. 정체는 18650 배터리. 온라인에서 3000원 대에 판매하고 있었다.
고은솔 반장은 “이 배터리는 웬만한 전자제품에 1개~10개까지 들어있다. 쉽게 구입해 교체할 수 있는 부품”이라며 “손풍기처럼 오래 사용하지 않으면 배터리가 방전될 수 있으니 가끔씩 전원을 켜주면 더 오래 간다”고 설명했다.
먼지가 잔뜩 낀 서큘레이터 내부. 이 서큘레이터는 삼각형 모양의 나사로 분해가 어려워 수리상점에 맡겨졌다. 주소현 기자 |
이날 곰손수리상점에서 열린 수리워크숍에는 손풍기뿐 아니라 각양각색의 전자제품들이 모였다. 드라이기부터 청소기, 전기밥솥, 믹서기 등이다.
물론 모든 물건들이 뚝딱 고쳐지지는 않는다. 흡입구를 분해해 먼지를 떼어내고 필터를 세척하는 것만으로도 성능이 좋아지는 청소기가 있는가 하면, 충전기 거치대가 부서진 청소기는 이곳에서 수리할 수 없다. 대신 제조사에 문의하거나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필요한 구성품만 구할 수 있는 조언을 받는다.
꽤 복잡한 수리가 필요했던 물건은 바람에서 탄내가 섞여 나던 드라이기였다. 겉보기에는 환풍구 부분의 실금이 가 있던 정도지만 막상 뜯어보니 안쪽으로는 접합부가 깨져 조각들이 내부에서 녹고 있었다.
두 시간 가까이 핀셋으로 눌어 붙은 플라스틱들을 떼어낸 고경자 씨는 “왜 타는 냄새가 나는 줄도 몰랐는데, 수리를 하니 더 이상 탄 냄새가 나지 않는다”며 “인고의 시간이 걸렸지만, 내 손으로 직접 드라이기를 고치니 너무 뿌듯하다”고 말했다.
12일 서울 마포구 '수리상점 곰손'에서 열린 '청소기, 선풍기, 드라이기 분해, 청소, 수리 워크숍'에서 드라이기를 분해한 모습. 주소현 기자 |
당연히 수리는 더 경제적이어야 한다. 새 제품을 사는 것보다 고쳐쓰는 것, 그것이 더 저렴한 건 당연한 이치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더 비싼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수리 문화 저변이 넓지 않으니, 일단 부품을 구하는 것도 일이다. 새 제품 가격보다 인건비가 높아 비싼 수리 비용을 물게 되는 일도 허다하다. 또 전파사나 수리점을 찾아가거나 물건을 보내고 받는 데에 시간이 든다.
혼자 고치려 해도 쉽지 않다. 나사 구멍이나 접합부가 꽁꽁 숨겨진 탓에 전문가나 경험자의 조언 없이는 분해조차 어렵다. 오래된 가전제품의 부품을 찾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수리를 하는 이유,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제일 좋은 방법”이라는 게 수리상점 곰손의 이야기다. 수리상점 곰손은 쓰레기를 줄이려는 사람들, 이른바 ‘알짜(알맹이만 찾는 사람들)’이 주축이 돼 지난 2월에 문을 열었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수리상점 곰손'에 각종 공구들이 비치돼 있다. 주소현 기자 |
이들은 수리를 대신 해주기보다 수리하는 방법을 익혀가도록 돕는 데 집중한다. 이에 다양한 크기의 드라이버부터 드릴, 에어건, 솔과 수건, 재봉틀 등 수리에 필요한 도구들이 이곳에 비치해뒀다. 수업을 듣지 않더라도 수리상점을 찾아 수리도구들을 빌려 사용할 수 있다.
수리에 실패하더라도 결코 손해가 아니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고은솔 반장은 “다음에 새 제품을 구입할 때 수명은 얼마나 될지, 부품 교체는 되는지 등 오래 쓸 물건을 고르는 눈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수리상점 곰손은 소비자들이 수리에 접근하는 만큼, 제조사들도 수리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연 곰손지기는 “쉽게 고장 나고 수리는 어려워 소비를 자주하게 하는 ‘계획적 진부화’를 경계해야 한다”며 “수리할 권리를 찾기 위해 수리상점을 운영하는 데 더해 수리권 보장법이 구체적 실효성있게 제기되도록 캠페인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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