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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무라이 반도체’ ‘베토벤 작전’…돈 퍼붓고 연합하는 ‘칩워’ 본격화
지난달 중국 상하이 반도체 전시회 기간 동안 전시된 반도체 제품들. [AFP]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 “반도체 산업은 방대한 자본 지출과 고도로 복잡한 연구 개발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신규 기업은 진입 장벽이 상당히 높다. 매우 정교하고 막대한 투자를 감당할 수 있는 국가는 소수에 불과하다.”

전세계 반도체 경쟁을 다룬 ‘칩 워(Chip War·반도체 전쟁)’의 저자 크리스 밀러 미국 터프츠대 교수는 최근 인공지능(AI) 시스템 구축을 위한 반도체 시장 독과점이 앞으로도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저서에서 반도체가 곧 국가 간 패권 경쟁의 핵심 요소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반도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국가 간 경쟁은 필연적이라는 의미다.

기업은 물론이고 반도체를 둘러싼 국가간 경쟁은 ‘쩐(돈)의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세계 주요국들은 반도체 기업 유치를 위해 거액의 보조금을 뿌리거나 국가 간 협력을 통한 반도체 동맹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미국과 중국 간 전략 경쟁에서 시작했던 ‘칩 워’가 전세계의 보편 현상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에 질세라…전세계가 ‘보조금 열풍’
네덜란드 벨드호벤에서 네덜란드 반도체장비업체 ASML 컨테이너가 쌓여있다. 지난달 네덜란드 정부는 ASML 본사가 있는 에인트호번 지역의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개선하는 이른바 ‘베토벤 작전’으로 25억유로(약 3조 7000억원)를 내기로 했다. [AFP]

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네덜란드 반도체장비업체 ASML은 네덜란드 의회에 이민 노동자에 대한 세금 감면 유지를 포함해 정부 차원에서 칩 산업 활성화 정책을 만들어 줄 것을 요청했다.

ASML은 네덜란드 직원 2만 3000명 가운데 40%가 외국인일 정도로 고숙련 외국인 노동자 의존도가 높다. AMSL은 지난해 네덜란드 의회에서 고숙련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없애는 반이민 법안이 통과되자 본사를 해외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자국 기업이 떠난다는 소식에 당황한 네덜란드 정부는 보조금 보따리를 내놨다. 지난달 네덜란드 정부는 “ASML 본사가 있는 에인트호번 지역의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개선하는 이른바 ‘베토벤 작전’에 25억유로(약 3조7000억원)를 지출한다”고 발표했다. ASML을 지키기 위해 반이민 정책도 변할 수밖에 없게 됐다.

‘사무라이 반도체’를 위해 일본 정부도 전례 없는 보조금 풀기에 나섰다. 지난 2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경제산업성은 라피더스에 연내 추가로 5900억엔(약 5조 2000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라피더스는 도요타, 키옥시아, 소니, NTT, 소프트뱅크 등 일본 대표 대기업 8곳이 반도체 국산화를 위해 설립한 회사다. 지난해 3300억엔(약 3조원)을 포함하면 현재까지 라피더스 지원금 규모만 9200억엔(약 8조 2000억원)이다. 일본은 올해 추가경정예산으로 반도체 산업 육성 자금 1조8537억엔(약 16조2000억원)을 확보했다.

일본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이유는 글로벌 흐름에 탑승하기 위함도 있다. 사이토 겐 경제산업상은 “반도체는 일본 산업은 물론 전 세계 산업의 기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차세대 반도체는 일본 산업 경쟁력의 열쇠를 쥔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포스트 차이나’를 노리는 인도는 지난해 ‘반도체 생산 공장 유치’를 목표로 100억달러(약 13조원)의 보조금 지급 계획을 내놨고, 유럽연합(EU)도 같은 해 430억유로(약 62조원)을 투입해 역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고 생산을 늘리기 위한 ‘유럽 반도체법’ 시행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공격적인 보조금을 지급한 미국은 총 390억달러(약 52조 2000억원)의 반도체 지원법(칩스법)을 마련한 바 있다.

중국 피해서 국가 간 연합도
[헤럴드DB]

국가 간 반도체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주요국들은 미국의 대(對)중국 규제가 심해지면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닛케이에 따르면 지난달부터 일본과 EU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차세대 칩과 배터리용 첨단 소재 협력에 관한 협상을 시작했다. 일리아나 이바노바 EU 혁신 담당위원은 “비즈니스에 공통 관심 분야에서 그러한 대화 프레임워크를 구축하면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U를 탈퇴했던 영국은 EU의 첨단 반도체 사업에 합류한다. 로이터는 지난달 30일 영국이 유럽 칩 이니셔티브에 동참해 13억유로(약 1조8000억원) 기금 중 먼저 3500만파운드(약 595억원)를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오는 10일에는 미국과 일본 정부가 반도체 공급망 구축 협력을 확인할 방침이다. 요미우리신문은 2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에서 반도체 조달 관련 특정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공급망 구축 협력을 확인할 방침을 굳혔다”며 “양국 정상은 경제적 위압을 문제시하고 대항해 나가는 자세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binn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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