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진 멎고 연료 타는 냄새”
일각선 전기계통상 문제 가능성도 제기
“출항전 정박해 이틀간 수리”
미국 교통안전위원회(NTSB) 직원이 27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프랜시스 스콧 키 다리를 들이받고 무너진 화물선 달리호를 바라보고 있다. |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미국 최대 자동차 수출입 관문인 메릴랜드주 볼티모어항만을 가로지르는 다리 ‘프랜시스 스콧 키 브리지’를 무너뜨린 화물선이 불순물이 섞인 저질 연료 탓에 동력이 꺼져 사고를 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관련 당국이 조사에 착수했다.
27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관련 사정에 밝은 소식통을 인용해 “대형 화물선이 동력을 상실하고 경간을 들이받는데 ‘오염된 연료’의 역할이 있었는지 여부가 조사에 포함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전날 새벽 볼티모어항을 나선 싱가포르 선적 컨테이너선 달리(Dali)호는 출항 약 한 시간 만에 엔진이 멈추면서 추진력을 잃고 표류하다 볼티모어 항만을 가로지르는 길이 2.6㎞의 다리인 프랜시스 스콧 키 브리지에 충돌했다. 이 사고로 다리 상당부분이 파괴됐고, 달리호도 잔해에 짓눌려 그 자리에 멈춰서는 신세가 됐다.
27일 달리호에 올라 조사를 진행한 한 당국자는 “배의 동력이 완전히 끊겼고 조타 장치나 전기 장치도 작동하지 않았다”면서 “엔진 하나가 털털거리더니 멈췄고 엔진실이 칠흙같이 어두워진 채 온통 연료 타는 냄새가 났다고 한다”고 사고 당시 상황을 조사한 결과를 전했다.
석유·천연가스 분야 전문가인 제럴드 스코긴스 딥워터프로듀서즈 최고경영자(CEO)는 워싱턴포스트(WP)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달리호의 주엔진과 연결된 연료 필터가 오염된 연료 탓에 생긴 찌꺼기에 막혔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해상 보안 관련 컨설팅 업체 I.R. 컨실리움의 이언 랠비 CEO도 화물선에 쓰이는 선박용 중유(重油)는 점도가 매우 높아 통상 커터스톡(cutter stock)으로 불리는 저점도 물질과 혼합돼 쓰이는데 이 과정에서 오염될 우려가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와 관련한 규제도 엄격하지 않은 편이라면서 “(이런 저질 연료는) 선박의 연료 라인 전체를 망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은 2018년 발간한 보고서에서 저질석유제품의 ‘위험한 혼합물’이 선박용 중유로 쓰이면서 최근 수년 사이 공해상에서 선박이 동력을 상실한 채 표류하는 사고가 수백건이나 발생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해당 보고서는 “벙커유(선박용 중유) 공급망은 오랫동안 비교적 불투명했다”면서 “그 결과 벙커유는 정유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의 최종 목적지가 돼 왔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폐자동차유나 플라스틱, 고무, 화장품, 비료, 종이류 제조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 등에 오염된 연료마저 선박용 중유에 혼합돼 쓰이는 경우가 발견된다고 보고서는 덧붙였다.
달리호가 출항전 전기 계통 문제를 겪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에 따르면 해운정보업체 컨테이너 로열의 공동관리자인 줄리 미첼은 영국 민영 ITV에 출연해 달리호가 사고전 볼티모어항에 이틀간 정박해 있으면서 전기 계통 관련 수리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심각한 전력 상실이 있었고, 심한 전력 문제도 있었다. 완전한 정전과 엔진 출력 상실 등을 포함한 모든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심지어 볼티모어 항만 다리 쪽으로 향하기 전 출항하는 과정에서도 달리호는 한 차례 전기적 문제를 겪었던 것으로 여겨진다고 더타임스는 덧붙였다.
미 교통안전위원회(NTSB)는 27일 달리호의 블랙박스를 회수해 사고원인 규명을 위한 조사에 착수했다. 제니퍼 호멘디 NTSB 위원장은 블랙박스 외에 전자장치와 일지 등 여타 서류를 모두 확보했으며 28일부터 달리호 선장과 선원들을 대상으로 한 대면 조사가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NTSB는 28일 밤 조사 진척 상황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yckim6452@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