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임대료·교육비에 ‘쩔쩔’
살아남은 임원도 급여 삭감 ‘고육지책’
홍콩 증권거래소 전광판 앞을 지나는 직장인들. [AP] |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미중 갈등과 시진핑 정부의 금융 규제 강화 여파로 홍콩의 글로벌 금융 중심지 역할이 약화되고 있다. 이에 높은 몸값을 구가했던 홍콩 은행가와 금융 전문가들은 이제 실업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블룸버그통신은 24일(현지시간) 홍콩 금융산업에 종사하는 금융 전문가 수를 나타내는 홍콩 증권선물위원회 허가 인력이 2021년 말 이후 600명 이상 감소해 지난해 말 4만4722명으로 집계 됐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2022년 기준 금융 서비스 활동이 홍콩 국내 총생산(GDP)의 23%, 고용의 7.5%를 차지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둔화는 홍콩 경제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국 기업의 기업공개(IPO)가 쏟아질 때 막대한 중개 수익을 챙겼던 월가 투자은행(IB)들은 이제 소속 직원들을 대량 감원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9월 수백명의 직원을 정리해고 한 이후 올해 초에도 3200개의 일자리를 없얬다. JP모건 체이스도 20여명을 해고했으며 뱅크오브아메리카(BoA)도 약 40명의 직원을 줄였다.
골드만삭스로부터 해고된 한 은행가는 “중국발 IPO 수가 크게 줄어들면서 직원 수를 유지할 명분이 사라진 IB들이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
블룸버그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홍콩 증시에서 IPO을 통해 조달된 자금은 1년 새 56% 감소한 460억홍콩달러에 그쳤다. 2020년 5348억달러가 조달된 것에 비하면 급감한 것으로 20여년 간 닷컴 버블 붕괴 이후 가장 적은 규모다. 상장 건수는 67건으로 거의 20%에 그쳤고 10억홍콩달러 이상을 조달한 건수는 13건에 불과했다.
지난해 중국증권감독관리위원회가 상장을 준비하는 기업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증권 범죄 단속에 나서면서 IPO 시도가 줄어든데다 홍콩 증시에 상장하려는 신주에 대해 등록제가 시행되면서 홍콩 증시 상장 과정이 복잡해진 것도 영향을 줬다.
해고된 은행가 들은 당장 생활비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한 금융 기관에서 해고된 에릭 리는 “해고된 지 17개월이 지났지만 새로운 일자리는 아직 찾지 못했다”면서 “한달 6만홍콩달러에 달하는 자택 임대료와 연간 100만홍콩달러의 자녀 교육비 청구서가 두렵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 IB 애널리스트 일자리를 잃은 양 씨는 몇달 간 일자리를 찾아 컨설팅, 벤처캐피털, 사모펀드 등 10여곳의 면접을 봤지만 번번히 고배를 마셨다. 월 2만홍콩달러의 임대료를 낼수 없게 된 그는 결국 중국 본토의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 비금융 일자리를 찾기로 했다.
아직까지 일자리를 보전한 고위급 은행가들은 자신들의 연봉을 삭감하며 일자리 보전에 급급한 상황이다. 홍콩 내 중국 증권사에서 채권 업무를 하고 있는 헨리는 지난 1년 간 동료들의 실직을 목도한 뒤 “급여가 30~40% 삭감되더라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다만 홍콩 금융업계가 겪는 ‘삭풍’이 곧 지나갈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홍콩 증권사 CLSA의 조나단 슬론 전 최고경영자(CEO)는 파이낸셜타임스 칼럼에서 “가장 최근의 강세장이 가져온 버블이 이제 사라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홍콩은 생존할 것이고 항상 그랬던 것처럼 번영할 것”이라며 후배 금융인들에게 희망을 버리지 말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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