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금리와 함께 끝난
‘아베노믹스’평가는? “효과 글쎄”
당분간 엔저 그대로 유지 될 듯
대기업 수출 늘어도 중소는 힘들어
엔화 오르면 한국 가격경쟁력 생겨
[헤럴드경제=김빛나·정목희 기자]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이 19일 ‘마이너스 금리 종료’를 선언하면서 2012년부터 10여년간 추진된 아베노믹스도 사실상 막을 내렸다. 아베노믹스는 아베 신조 전 총리가 내세운 경제 정책을 이르는 용어로 금융완화·재정지출·성장전략이라는 3개의 화살로 구성되지만, 핵심 정책은 마이너스 금리 등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이다.
일본 경제전문가 3명은 아베노믹스의 성과에 아쉬움을 표했다. 김명중 닛세이기초연구소 수석연구원·아지아대학 특임준교수, 우에노 츠요시 닛케이기초연구소 연구원, 쿠마노 히데오 다이이치생명 리서치센터 수석연구원은 21일 헤럴드경제와 아베노믹스에 대한 평가와 향후 일본 경제 전망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이들은 그간의 일본 경제 부양책과 관련해 “실효성이 부족했다”면서 “일본의 잠재 경제성장률은 여전히 낮다”고 평가했다. 당분간 엔저 현상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내놨다.
19일 일본 도쿄에서 한 남성이 일본은행(BOJ) 본사를 지나가고 있다. 일본은행은 이날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고 단기 정책금리(무담보 콜금리)를 0∼0.1%로 유도하기로 결정했다. [AFP] |
1990년 ‘거품경제’가 붕괴하면서 대규모 예산 적자, 만성적인 디플레이션, 경제 성장 침체 등의 문제를 겪으며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을 겪었다. 이를 벗어나고자 시도한 정책이 아베노믹스다.
김 연구원은 “아베노믹스 가운데 특별히 어떤 정책이 효과가 좋았다고 하긴 어렵다”면서 “다만 지속적으로 했다는 점에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에노 연구원 역시 “여러 대책이 있었지만 실효성이 있었던 정책은 떠오르지 않는다”면서 “단기적인 경기 대책보다는 구조개혁을 위한 대책을 세웠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금융완화로 엔저(低) 현상이 오랫동안 지속됐다”면서 “엔저로 기업 수출와 증시 부양이 가능했고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 일본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아베노믹스의 긍정적인 면”이라고 했다. 하지만 엔화 대비 비싼 달러 덕에 원자재 수입가격이 올라 내수 중심의 중소기업 부담이 커졌고, 오른 물가로 빈부격차는 심해지고 서민들의 생활은 어려워졌다고 덧붙였다.
구마노 연구원도 “금융완화 정책은 성공했다. 하지만 구로다 하루히코 전 일본은행 총재의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은 너무 길었다”면서 2015년 정도에 멈췄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2013년 취임한 구로다 총재는 10년 간 대규모 국채 매입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하는 충격 요법 ‘구로다 바주카포’를 펼쳤다.
우에노 연구원은 “정책 효과가 모두 일정 선에 그치는 한계를 보였다”면서도 “아베노믹스 초기에 펼쳤던 금융완화는 당시 문제가 됐던 과도한 엔고를 시정하고 기업의 경영 환경을 개선하는 효과는 봤다”고 평가했다.
지난 19일 일본 쇼핑거리에서 시민이 길을 건너고 있다. 이날 일본은행은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고 단기 정책금리(무담보 콜금리)를 0∼0.1%로 유도하기로 결정했다. [로이터] |
마이너스금리 종료 선언은 일본이 저성장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일까. 이에 대해 우에노 연구원은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실질 경제성장률은 0에 가깝고, 지난해 예상 경제성장률도 1%대에 머무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다만 최근 산업계의 임금 인상 분위기는 바람직한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원도 “올해 일본의 실질 경제성장률은 1%미만일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성장률이 이전보다 좋아진 건 사실이지만 인구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현황 등을 고려하면 향후 높은 경제성장을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구마노 연구원은 “일본의 잠재경제성장률은 0.7%로 매우 낮다”면서 물가가 오르면서 실질임금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상황도 체감경기를 악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경제를 이렇게 평가한 이유에 대해 김 연구원은 “엔저가 길어지면서 외국인에게 일본은 저렴한 나라라는 이미지가 생겼지만 일본 국민은 엔저 효과를 누리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수출이 늘면서 대기업 직원 월급은 늘었지만 중소기업을 임금을 올리지 못하면서 대기업-중소기업 격차가 확대된 점도 이유로 들었다.
우에노 연구원은 “여러 원인이 있지만 기업이 성장하지 못한 것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설비 투자나 IT기업에 대한 투자, 인적투자를 적극적으로 못했다”면서 “인구는 감소하는데 일본 기업들도 성장하는 이미지를 가지지 못했다”고 했다. 일본 근로자의 내년 임금을 결정하는 춘투(春鬪·춘계 임금투쟁)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전체 일본인들의 임금이 오를 지는 봄이 지나야 안다.
지난 19일 일본 도쿄에서 일본은행이 8년간의 마이너스 금리를 종료하자 외환 거래소 직원이 실시간 엔/달러 환율을 보고 있다. [로이터] |
마이너스 금리 종료에 따른 엔화 향방에 대해 구마노 연구원은 “당장의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론대로라면 금리가 오르면 엔화 가치가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일본 은행은 (금리 인상 후에도) 완화적인 금융 환경을 유지하겠다면서 어떻게든 엔저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구마노 연구원은 “그러면 수입 물가는 오르고 사람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금리 인상 효과도 사라진다”고 말했다.
우에노 연구원도 당분간은 금리 인상 효과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은행이 적극적인 금리 인상을 실시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만약 엔화가 오른다면 그 속도에 따라 영향력이 달라져서 천편일률적으로 말할 순 없다지만 수출 기업이나 차입이 많은 기업은 실적이 악화하고 금융기관 수익에는 긍정적”이라고 분석했다.
김 연구원은 “어쨌든 엔화 가치가 지금보다 높아질 것”이라며 “미국과의 금리 차이가 좁혀지면 일본에 투자하는 투자자가 증가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도쿄 등 일본 집값이 많이 올랐는데 주택대출 이자 부담이 커지면 주택 구입을 미루고 소비도 줄이는 등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금리 인상 후폭풍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올해 7월 신권을 발행한다. 금리 인상과 함께 신권 발행이 시행될 경우 일본인들이 장롱에 넣어뒀던 예금(단스 예금)이 시장에 나올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김 연구원은 “단스예금은 최대 80조엔까지 추계된다. 일본 정부가 신권을 발행하는 이유 중 단스 예금을 시장으로 끌어내기 위함도 있다고 본다”면서 “단스예금이 주식시장 등에 투입되면 경기에 어느 정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구마노 연구원과 우에노 연구원은 “투자로 이어지면 가계에 도움 되겠지만, 구권도 여전히 사용할 수 있고, 은행 예금으로 이어지면 효과는 미미하다”며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2007년 2월 이후 17년 만에 금리 인상을 결정한 19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 |
한편 글로벌 시장의 주요 채권국인 일본의 통화정책 변화는 당장 국제 금융시장을 재편하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자본 시장의 물줄기를 바꿔 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대해 김명중, 구마노, 우에노 연구원들은 투자자들이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을 급격히 청산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엔캐리 트레이드란 금리가 저렴한 엔화로 미국 채권 등 해외자산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선 김 연구원은 “일본은 한국과 수출경합도가 높기 때문에 일본의 금리 인상에 의해 엔화가 오르면 한국의 가격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높아진다”면서 “한국 수출기업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일본이 금리를 더 인상하면 한국에 들어오는 일본인 관광객이 증가해 내수시장 확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일본의 금리 인상 상승폭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된다면 엔화 자금의 대량 유출도 가능하므로 이에 대한 대비는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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