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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수리가 간 쪼아도 참는다” 최악고문 받는 男, 무슨 사연[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프로메테우스 편]
<동행하는 화가>
야콥 요르단스
귀스타브 모로
.
편집자주
〈후암동 미술관〉은 그간 인간의 세계를 담은 예술에 초점을 맞춰왔습니다. 이제 시간을 크게 앞당겨 신의 세계를 살펴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부터 명화와 함께 읽어봅니다. 기사는 여러 참고 문헌 기반에 일부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쓰였습니다.
귀스타브 모로, 프로메테우스(일부 확대)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독수리가 또 어김없이 날아온다.

코카서스 산 바위에 묶인 프로메테우스는 맹수가 점점 더 가까워지는 걸 가만히 쳐다봤다. 저항한들 장인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사슬이 풀리지 않을 걸 알기 때문이었다. 독수리는 늘 그랬듯 프로메테우스의 넓적다리 옆에 앉았다. 갈고리 같은 부리로 프로메테우스의 몸을 후벼팠다. 얼굴을 처박은 채 그의 간을 야금야금 쪼아먹었다. 처음에는 살점이 찢기는 통증, 그다음은 장기가 뜯어지는 고통이었다. 그런데도 프로메테우스는 가만히 있었다. 피가 터지고 흘렀지만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독수리는 느긋하게 만찬을 즐겼다. 주린 배를 양껏 채운 후 다시 날아갔다. 프로메테우스의 몸은 하룻밤 사이 먹음직스럽게 아물었다. 녀석이 부리 자국을 남긴 간 또한 제 형태를 되찾았다. 그러면 때려죽이고 싶은 그 독수리가 또 어김없이 날아왔다. 영원한 형벌이었다.

귀스타브 모로, 프로메테우스

19세기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모로는 그런 프로메테우스를 위엄 가득한 모습으로 그렸다.

프로메테우스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듯 그저 먼 곳을 보고 있다. 은색 사슬을 풀 생각도, 날개 달린 불청객을 쫓아낼 생각도 없다. 프로메테우스가 이러고 있으니 외려 독수리가 볼품없어 보인다. 하이에나처럼 먹이를 구걸하는 듯도 하다. 프로메테우스의 발밑에는 이미 죽은 독수리가 목을 늘어뜨린 채 썩어가고 있다. 처벌자가 죄수에게 외려 굴복한 모습이다. 하늘은 흐리다. 우중충한 먹구름이 반 이상을 차지한다. 마치 저 위에 있는 심판자의 근심과 노여움을 표현하는 양.

티탄족의 예언자

프로메테우스는 티탄(Titan·강력하고 거대한 존재) 출신의 신이었다.

그는 헤파이스토스 이전 장인의 신이었다. 무엇보다 미래를 알 수 있는 예지 능력을 갖춘 신이었다. 그의 이름 뜻은 '먼저 생각하는 자'였다. 'pro'를 딴 단어로 훗날 'prologue(프롤로그)', 'prophet(예언자)' 등이 등장하게 된다. 어느 날, 프로메테우스는 거부할 수 없는 핏빛 미래를 내다봤다. 제우스포세이돈, 하데스 등 이른바 '올림포스의 신' 무리가 티탄족의 패권을 노려 전쟁을 벌이는 것이었다. 티탄족이 굴복하고, 모든 권한을 빼앗긴 채 타르타로스(지옥)에 갇히는 것이었다. "그들과 전쟁을 벌이면 우리가 집니다. 우리는 하늘과 대지, 태양과 달 등 가진 모든 것을 잃을 겁니다." 프로메테우스는 티탄족을 설득했다. 하지만 자신감에 찬 티탄족은 그의 말을 무시했다. 결국 프로메테우스는 동생 에피메테우스만 끌고 제우스에게 투항했다. 전쟁이 곧 터졌다. 이른바 티타노마키아(Titanomachia·제우스와 티탄족 사이에 벌어진 전쟁)가 발발한 것이다. 10년 이상의 격전 끝에 승리는 제우스 세력에게 돌아갔다. 이제 세상 주인은 제우스와 그의 무리들이었다. 기세등등하던 티탄족은 이들의 번개와 삼지창, 투명 투구 등에 농락당해 치욕적 패배를 겪었다. 프로메테우스 형제를 뺀 나머지 티탄족은 예지대로 모두 지옥행을 피하지 못했다.

코르넬리스 반 하를렘, The Fall of the Titans

세상의 새로운 군림자가 된 제우스에게 더는 위협적인 적은 없는 듯했다.

그는 그제야 하늘 아래 땅을 바라봤다. 대지는 평화로웠지만 그뿐이었다. 산과 계곡은 너무 고요했고, 드넓은 들판도 너무 허전했다. 고생 끝에 최고 신이 됐는데도 정작 다스릴 게 없다는 생각에 공허함도 밀려왔다. …새 생명을 심어볼까? 생각에 잠긴 제우스는 답을 내놓았다. 신과 닮은 생김새의 '인간'을 빚고, 그 인간과 함께 살아갈 여러 동물을 만들어 풀어놓자는 것이었다. 어떤 신이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제우스는 손재주가 좋은 프로메테우스를 곧장 떠올렸다.

부모의 마음으로 인간을 빚다
콘스탄틴 한센, 흙으로 인간을 창조하는 프로메테우스

"…그런 명령을 받았어. 가장 중요한 인간은 내가 만들테니 너는 다른 동물을 맡아다오."

제우스를 만나고 온 프로메테우스는 동생 에피메테우스와 곧장 작업에 나섰다. 프로메테우스는 진흙과 강물을 버무려 인간을 빚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 창조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최고의 기술을 가진 그에게도 신과 닮은 생명체를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19세기 덴마크 화가 콘스탄틴 한센은 그런 프로메테우스의 고민을 화폭에 담았다. 제목은 '흙으로 인간을 창조하는 프로메테우스'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조각하다말고 가만히 생각에 잠겨있다. 이 또한 아직 완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는 듯하다. 이 인간의 상(像)은 곧 저 아래의 실패작처럼 바닥에 구르게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기원전 3세기의 그리스 작가 파우사니아스의 글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보이오티아 지방에 가면 '프로메테우스 석상'이라는 글씨의 대리석이 있다. 근처 골짜기에는 인간의 땀 냄새가 나는 돌이 굴러다닌다. 그 돌은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만들던 흙덩어리가 굳은 것이라고 한다." 그동안 에피메테우스는 뱀과 여우, 두꺼비와 무지개송어 등 온갖 동물을 만들었다. 에피메테우스의 이름 뜻은 '나중에 깨닫는 자'였다. 여기에서 '에필로그'(epilogue) 등 단어가 파생한다. 그는 몇 수 앞을 내다보는 형과 달리, 당장의 앞가림도 못하는 성향이었다. 그런 에피메테우스가 또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는 제우스가 준 보따리를 활짝 열었다. 사자에게 매서운 송곳니, 악어에게 강력한 턱뼈, 곰에게 날카로운 발톱을 줬다. 사슴에게 튼튼한 뒷다리, 공작에게 화려한 날개, 카멜레온에게는 피부색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각각 안겨줬다. 그사이 프로메테우스가 드디어 인간을 빚었다. 제우스의 선물 중 가장 좋은 것을 주기만 하면 끝이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에피메테우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선물이 무엇이든 빨리 갖고 오라는 뜻이었다. 에피메테우스의 그제야 깨달았다. 그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형. 어쩌지?" "무슨 일이야?" "…인간한테 줄 것으로 남은 게 없어."

루이 드 실베르트, 미네르바(아테나)의 도움을 받은 프로메테우스의 인간 형성(인간 창조)

동생을 믿고 일에만 몰두한 게 실수였다.

프로메테우스는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면 인간은 사자에게 물려 죽고, 곰에게 찢겨 죽고, 까마귀에게 쪼여 죽을 것이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일단 인간에게 직립 보행의 능력부터 줬다. 넓은 시야와 두 팔의 자유를 선사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부족했다. 프로메테우스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올림포스 신 중 가장 말이 잘 통하는 상대였다. 프로메테우스는 그녀에게 집 짓는 법, 농사짓는 법, 읽고 쓰고 셈하는 법 등을 배웠다. 익힌 모든 기술을 인간에게 전해줬다. 그럼에도 인간은 여전히 약했다. 천적 천지였다. 프로메테우스는 결심했다. 인간에게 '제우스의 선물' 말고 자신이 줄 수 있는 선물을 건네기로 한다. 이었다. 그는 대담했다. 아테나의 전차가 내뿜는 화염을 훔쳤다. 올리브 가지 끝에서 활활 타오르는 이 불을 인간에게 갖다줬다. 다행히 아테나는 인간에게 너그러운 신이었다. 프로메테우스의 도둑질을 모른 척 넘어갔다. 17세기 프랑스 화가 루이 드 실베르트는 불을 쥐고 온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이를 전하는 장면을 그렸다. 그 순간 아테나 여신이 등장한다. 화들짝 놀란 프로메테우스에게 이 여신은 괜찮다는 양 미소 짓는다. 주변에는 에피메테우스가 빚은 사자와 토끼, 공작 등이 있다. 인간을 위협하던 사자는 불이 두려운 듯 긴장한 모습이다. 그림 제목은 '미네르바(아테나)의 도움을 받은 프로메테우스의 인간 형성(인간 창조)'이다.

농락 당한 제우스
휴고 보겔, 불을 가져온 프로메테우스

불을 쥔 인간은 그제야 만물의 영장(靈長)으로 군림했다.

밤이 더는 두렵지 않았다. 추위도 더 이상 괴롭지 않았다. 맹수 또한 이제는 위협적 생명체가 아니었다. 이런 가운데 딱 한 존재, 불을 얻은 인간을 못마땅하게 보는 이가 있었다. 불은 신에게만 어울린다고 본 제우스였다. 문명을 이룬 인간은 신에게 감사함을 표하는 제사를 하기 시작했다. 제우스는 그 모습을 보고서야 마음을 약간 누그러뜨렸다. "신께서 한 접시를 택하신다면, 나머지는 저희가 감사히 먹겠습니다." 몸소 모습을 보인 제우스 앞에는 인간이 차린 두 개의 그릇이 있었다. 하나에는 먹음직스러운 기름기가 두툼히 깔려있었다. 또 하나에는 바짝 마른 동물 뼈가 잔뜩 쌓여있었다. 제우스는 윤기가 흐르는 첫 번째 그릇을 골랐다. 하늘로 올라간 제우스는 설레는 마음으로 식기를 쥐었다. 그런데…. 기름 덩어리를 건져보니 그 밑에 깔린 건 온갖 잡뼈뿐이었다. 번지르르한 포장에 속은 것이었다. 이는 프로메테우스의 계략이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이 고기 중 맛있는 부위를 먹길 바랐다. 그래서 먹음직스럽지만 별것 없는 접시, 볼품없지만 밑바닥에 살코기가 가득한 접시를 내놓게끔 한 것이었다. 수치심에 젖은 제우스는 격분했다. 그는 인간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걸 빼앗기로 했다. 다른 전승에선 제우스가 프로메테우스와 인간의 속임수를 알고도 가짜 접시를 골랐다고 한다. '괴롭힐'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다. 어쨌든, 제우스가 내린 결론은 똑같았다. "구름의 신은 당장 비를 내려라." 그러자 온 세상에 장대비가 쏟아졌다. 불이란 불은 다 꺼졌다. "바람의 신들은 한 점의 불씨도 남기지 말고 바닷속에 밀어 넣거라." 그렇게 해 세상 모든 불이 사라졌다. 인간은 다시 약해졌다. 밤과 추위가 괴로워졌다. 맹수도 두려워졌다. 불을 되찾는 것. 이들이 바라는 건 하나였다.

얀 코시에르·페테르 파울 루벤스, 프로메테우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의 신음을 차마 듣고만 있지 못했다.

지금 계획하는 이 행동을 하면 미래의 자신이 어떻게 될지 뻔히 예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부모의 마음이었다. 자기가 빚은 인간은 모두 자식 같았다. 프로메테우스는 회향나무 가지를 꺾었다. 한눈팔고 있는 제우스 몰래 그의 벼락에 끝머리를 갖다댔다. 가지가 활활 타올랐다. 프로메테우스는 곧장 땅으로 도망쳤다. 그가 화로의 여신 헤스티아의 부뚜막에서 불을 붙였다는 말도 있다.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에서 불을 훔쳤다는 설도 있다. 프로메테우스를 스승으로 여긴 헤파이스토스가 이를 눈치채고도 티를 내지 않았다는 설도 따라온다. 다만 작가 겸 신화학자 이윤기는 반골 기질의 프로메테우스가 틀림없이 제우스의 벼락에서 불을 훔쳤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17세기 플랑드르 화가 얀 코시에르 페테르 파울 루벤스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 몰래 불을 훔친 그 순간을 포착해 화폭에 표현했다. 불을 쥔 프로메테우스가 황급히 땅으로 향한다. 표정에는 다급함만 있을 뿐, 두려움은 느껴지지 않는다. 제우스는 뒤늦게 정신 차린 듯하다. 하늘 위 구름 틈에서 그의 노란 빛이 뿜어져 나온다. 물론, 이미 때는 늦었다.

제우스를 떨게 하다
하인리히 퓌거,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주는 프로메테우스

18세기 독일 화가 하인리히 퓌거는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가 생기를 잃은 인간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표현했다.

제목은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주는 프로메테우스'다. 프로메테우스는 여전히 제우스가 있는 곳을 보고 있다. 그의 일탈을 보는 모든 요정과 정령이 조용히 있길 원하는 듯 손가락을 입에 대고 있다. 그런 그의 자세는 늠름하고 당당하다. 불을 되찾은 인간은 문명도 되찾았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는 곧 모든 걸 빼앗겼다. 그가 인간을 위해 벌인 일탈이 제우스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 탓이었다. "인간에게 왜 다시 불을 가져다줬는가."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꿇어앉힌 뒤 따졌다. 제우스는 그가 사죄하길 바랐다. 이성을 잠시 잃었다며, 책임지고 이번 일을 수습하겠다고 싹싹 빌기를 원했다. 프로메테우스는 가만히 있었다. 그런 그는 토해내듯 말을 내뱉었다. "인간을 위한 길이었습니다." "뭐라고?" "그것이야말로 신이 해야 할 일 아닙니까."

반 테오도르, 불카누스(헤파이스토스)에게 묶인 프로메테우스

제우스는 더는 참지 못했다.

"너를 평생 코카서스 산 절벽에 묶어놓겠다." 격분한 제우스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그리고,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뜯기는 고통을 안겨주겠다." 제우스는 뜻을 굳힌 듯 뒷말을 덧붙였다. "스틱스(Styx)강에 맹세하건대, 너는 바위에 영원히 구속될 것이다." 스틱스강은 저승을 일곱 바퀴 돌아 흐르는 강이었다. 죽는 순간 살아날 수 없듯, 한 번 건너면 돌아갈 수 없는 강이었다. 즉 신이든 인간이든 이를 걸고 하는 약속은 절대 돌이킬 수 없었다. 최고 신이라고 해도 이를 어기면 1년간 숨도 못 쉬고, 뭘 먹거나 마시지도 못했다. 9년간 다른 신들과 교제도 금지였다. 제우스는 헤파이스토스를 불렀다. 스스로 힘으로는 절대 끊을 수 없는 사슬을 주문했다. 헤파이스토스는 프로메테우스가 안타까워 울면서 이에 응했다고 한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반 테오도르의 그림 '불카누스(헤파이스토스)에게 묶인 프로메테우스'를 보면, 헤파이스토스는 눈물에 젖은 표정으로 이 반역자를 묶고 있다. 날개 달린 모자, 똬리 튼 뱀이 마주하는 지팡이를 든 헤르메스는 제우스를 대신해 실실 웃고 있다. 독수리는 군침을 흘리는 중이다. 프로메테우스는 바위산에 끌려갔다. 그는 입술을 계속 실룩였다. "어이. 왜 자꾸 웃는가?" 보다 못한 제우스가 물었다. "저는 미래를 봤습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건가?" "당신은 아버지의 왕좌를 빼앗았지요. 그런데, 당신의 시대는 영원할 것 같습니까?" 프로메테우스는 그 말을 끝으로 침묵을 지켰다. 제우스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는 뒤늦게 깨달았다. 이 자가 예지의 신이라는 점을.

제우스여, 인간을 사랑하시오
야콥 요르단스, 묶인 프로메테우스

"…그러니까, 이제 제발 말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어림없는 소리."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를 대신해 찾아온 전령의 신 헤르메스의 구슬림을 재차 외면했다. "벌써 3만년이 지나지 않았습니까. 그 '예언'을 말씀만 하신다면 제우스의 노여움도 가라앉을 겁니다." "신들의 세계에서 3만년 따위야." 프로메테우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제우스가 자기도 모르게 그 일을 한다면 곧장 몰락할 것이야. 그리고 그날이 되면 헤르메스 자네도 무사하지 못할 테지." 프로메테우스의 말은 이게 전부였다. 그사이 독수리가 또 날아왔다. 프로메테우스는 이번에는 헤르메스 앞에서 보란 듯 비명을 질렀다. 고통이 아닌 분노의 내지름이었다. 17세기 플랑드르의 대표 화가인 야콥 요르단스는 이 장면에 집중했다. '묶인 프로메테우스'로 화폭에 옮겨 담았다. 독수리에게 깔린 프로메테우스의 발치에 인간의 상이 쓰러져 있다. 이는 인간 또한 곧 프로메테우스만큼의 고통을 겪을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프란체스코 바르톨로치·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바위에 묶인 프로메테우스-그의 간을 먹고 있는 독수리

사실 프로메테우스는 기다리고 있는 게 따로 있었다.

"그래, 내가 졌다. 나 또한 앞으로는 인간을 사랑하겠다. 그러니 부디…." 제우스가 또다시 스틱스강을 걸고 이같이 맹세하길 바랐다. 그렇다면 그가 내다보는 모든 미래를 말할 것이었다. 제우스에게 닥칠 수 있는 재앙을 막게끔 해줄 것이었다. 하지만 제우스는 그러지 않았다. 반대였다. 제우스의 분노는 여전했다. 프로메테우스에게 벌을 줬으니 이제 인간에게 보복할 차례였다. 제우스는 헤파이스토스를 또 불렀다. 그에게 그간 없던 새로운 인간을 한 명 만들라고 했다. 그녀에게 붙인 이름은 '판도라'였다. 또 다른 재앙이 시작될 참이었다. ▶'판도라'의 이야기는 다음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야콥 요르단스(Jacob Jordaens·1593~1678)
벨기에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 안토니 반 다이크와 함께 17세기 대표적인 플랑드르 화가로 꼽힌다. 수채화, 역사화, 종교화, 신화화, 초상화 등 모든 양식을 소화할 만큼 재능이 출중했다. 실력을 알아본 루벤스가 그를 동생 같은 제자로 대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생생한 묘사, 과장된 붓질이 특기였던 그는 영국, 스페인, 스웨덴 등 유럽 왕가로부터 작품 제작 의뢰를 받았다. 대표작은 '네 명의 사도', '농가를 방문한 사티로스' 등.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1826~1898)
프랑스 화가 겸 파리 에콜 데 보자르의 교수. 렘브란트 반 레인의 강렬한 명암대비, 외젠 들라크루아의 낭만적 묘사에 영향을 받은 그는 곧 프랑스 상징주의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한다. 역사와 신화, 종교적 주제를 꼽아 몽환적인 풍의 그림을 즐겨 그렸다. 틀에 박히지 않은 가르침, 너그러운 성격으로 교수 재직 당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야수파의 창시자 앙리 마티스의 스승이었다. 대표작은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환영' 등.

〈참고자료〉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이윤기, 웅진지식하우스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 아이스킬로스, 지만지드라마

〈후암동 미술관 현대미술 편 읽는 순서〉

1) “벌거벗은 女로 우릴 조롱” 욕이란 욕 다 먹었다[후암동 미술관-에두아르 마네 편] - 최초의 모더니스트(모더니즘①) (2023. 6. 24.)

2)“11살 연하女와 비밀연애, 자식도 낳았다고?”…10년 숨겼다 ‘들통’[후암동 미술관-폴 세잔 편] - 현대미술 창시자(모더니즘②) (2023. 7. 1.)

3)“나체女에 웬 아프리카 가면?” 얼빠졌다 조롱당한 그의 ‘반전’[후암동 미술관-파블로 피카소 편] - 희대의 반항아(입체파) (2023. 5. 20.)

4)“무자비한 짐승男인 줄 알았는데” 쫙 빼입은 신사 등장, 모두 놀랐다[후암동 미술관-앙리 마티스 편] - 행복의 야수(야수파) (2023. 8. 26.)

5)“내 이름은 로즈” 여장남자된 30대男 전말…‘빅픽처’ 있었다[후암동 미술관-마르셀 뒤샹 편] - 열정의 탐험가(레디메이드·개념미술) (2023. 6. 10.)

6)“외간여성과 시속 120km 광란의 음주질주” 즉사한 男정체 보니[후암동 미술관-잭슨 폴록 편] - 미국의 신화(액션페인팅) (2023. 7. 15.)

7)시뻘건 내 피와 교감해보겠나…울든, 기절하든 그대 마음[후암동 미술관-마크 로스코 편] -교감의 마술사(추상표현주의) (2023. 6. 17.)

8)“나나 네 엄마나 죽느냐 사느냐한다” 190㎝ 키다리 아저씨, 딸에게 한 고백[후암동 미술관-김환기 편] -붓을 든 시인(추상표현주의 특별편) (2023. 8. 19.)

9)“관음男-노출女가 만났네요” 조롱…둘은 ‘환상의 짝꿍’이었다[후암동 미술관-살바도르 달리 편] - 위대한 쇼맨(초현실주의) (2023. 7. 8.)

10)“여자랑 사느니 맹수랑 살겠다” 아내앞서 폭언…‘전쟁같은 사랑’을 한 부부[후암동 미술관-에드워드 호퍼 편] 고독의 화가(불모지) (2023. 8. 5.)

11)“난 고깃덩어리, 죽으면 시궁창에 던져버려” 폭탄발언…그는 ‘인간중독’이었다[후암동 미술관-프랜시스 베이컨 편] 고통의 화가(외딴섬) (2023. 7. 29.)

12)“죽일거야” 그녀가 쏜 3번째 총알이 몸 관통…죽다 살아났지만[후암동 미술관- 앤디 워홀 편] - 위대한 악동(팝아트) (2023. 6. 3.)

13)“흑인의 삶 어때?” 무례한 공격들…마돈나도 반한 27살男 무너졌다[후암동 미술관-장 미쉘 바스키아 편] - 자유의 반군(신표현주의) (2023. 5. 27.)

14)“엄마가 사라졌다, 속이 시원했다”던 그녀도 실종…1년뒤 ‘뜻밖’의 발견[후암동 미술관-아그네스 마틴 편] - 홀로 선 은둔자(미니멀리즘) (2023. 8. 12.)

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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