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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6개월 내에 과학 기반 감축목표 이니셔티브(The Science Based Targets initiative·SBTi)에 가입하라. 아니면 모든 거래가 끊길 수 있다.’
명료하고 단호한 고객사의 메일을 받은 중소기업 블루버드. 이 메일 하나가 회사를 뒤집어놨다.
SBTi는 온실가스 감축목표 설정을 돕고 이를 검증·승인하는 협의체다. 여기에 가입하는 건 언제까지, 얼마만큼 온실가스를 줄일 건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이행하라는 의미다.
좀 더 알려진 ‘RE100(기업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자는 캠페인)’과 유사한 기후위기 대응 방식이다.
회사 존폐위기에서 블루버드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SBTi에 가입했다.
블루버드는 이 덕분에 유명해졌다. SBTi에 가입한 국내 기업은 40여개에 불과하다. 중소기업으론 블루버드가 최초다. 대기업도 하기 힘든 일을 중소기업이 동참한 것.
향후 블루버드처럼 의무적으로 탄소 감축에 동참하지 않으면 기업이 세계무대에 설 수 없는 시대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기업 생존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셈이다. 블루버드가 그 예를 보여준다.
블루버드도 SBTi 가입까지 순탄치만은 않았다. 산업용 모바일기기 제조업체인 블루버드는 이 같은 고객사의 통보에 “SBTi가 도대체 무엇이며, 왜 우리가 탄소를 감축해야 하냐”며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하지만 선택지가 없었고, 이런 우여곡절 끝에 블루버드도 동참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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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중소기업 중 SBTi에 가입한 업체는 블루버드가 처음이다. SBTi에 가입한 기업, 공공기관 및 금융사는 전 세계적으로는 1700여개에 달하지만 국내에는 40곳에 불과하다.
결제 단말기나 포스기 등을 비롯한 산업용 모바일기기 및 솔루션을 제공하는 블루버드가 온실가스 감축의 최전방에 내몰린 데에는 고객사들의 입김이 결정적이었다.
코카콜라나 버거킹과 같은 식음료기업부터 루프트한자, DHL과 같은 물류항공사, 토요타 등 자동차업체까지 매출의 90%는 해외, 그중에서도 유럽권에 집중돼 있었다.
1995년 시작한 블루버드는 2020년대 들어 거의 모든 고객사로부터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목표와 이행 결과를 요청받았다고 한다. SBTi에 먼저 가입한 블루버드의 고객사들이 스코프 3단계를 충족하기 위해 블루버드도 SBTi에 가입하기를 요구한 것이다.
[블루버드 제공] |
스코프란 온실가스 배출원에 따른 분류다. 스코프1은 해당 기업이 직접 배출, 스코프2는 간접 배출하는 온실가스다. 스코프3은 직원의 출퇴근 과정이나 가맹점, 원자재 구입 등 사업장 밖에서 발생하는 모든 온실가스 배출원을 포함한다.
김경남 블루버드 차장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공급망에서 이 같은 압력을 받은 경우가 많지 않지만 유럽권에는 주요한 이슈”라며 “프랑스 등 유럽권에서는 지속 가능한 경제를 이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객사가 블루버드에 요구한 사항은 6개월 내에 SBTi에 가입하고, 전년 대비 최소 2.5%의 온실가스를 감축하되 첫 실적은 가입 2년 내에 달성하라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해마다 고객사에 감축계획과 활동 실적 등을 제출해야 했다.
블루버드의 경우 다행히 중소기업인 터라 직접 및 간접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줄이는 조건으로 SBTi에 가입할 수 있었다. 블루버드가 직접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주로 휘발유를 사용하는 자동차나 에어컨 냉매 등에서 발생했다. 이는 전기차로 교체하는 것으로 줄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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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블루버드가 사용하는 전기나 도시가스 등에서 간접 배출되는 온실가스였다. 블루버드가 자체적으로 줄이기 어려운 탓이다. 김경남 차장은 “점심시간 절전이나 개인 냉난방기 사용 자제 등 전기를 아껴 쓴들 온실가스 5~10%도 줄이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간접 배출 온실가스는 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를 구매하는 것으로 갈음했다. 해외에서는 재생에너지 보급에 기여하지 않고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인증서를 온실가스 감축 수단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인증서의 가격은 1000㎾당 2만~3만원 선으로, 블루버드는 인증서 구입에 연간 300만원가량을 사용하게 됐다.
김 차장은 “온실가스 간접 배출량 감축 핵심은 절전이 아니라 재생에너지 사용에 달려 있다”며 “과거에 기술발전이 회사 성장을 이끌었다면 이제는 ”기후위기 대응이 회사의 성장을 이끌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기업들의 비자발적(?) 온실가스 감축 노력은 블루버드만의 일이 아니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정동림 세계자연기금(WWF) 지속가능금융팀장은 “비용 등을 고려하면 기업이 자발적 온실가스를 줄일 유인이 없다”며 “글로벌 공급망과 고객사의 요구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이 더 빈번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addressh@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