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해밀턴, 도대체 무엇이 오늘날의 가정을 이토록 색다르고 매력 있게 만드는가(일부) |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제기랄, 그놈의 잡지가 또 가득 쌓여있다.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이!" "잡지는 사 왔어?" 이 인간은 나보다 잡지를 먼저 찾았다. 나는 그의 작업실 소파로 미국 잡지 몇 권을 던졌다. 그는 그제야 방긋 웃었다. 그는 얼마 전부터 신문, 잡지에 매달렸다. 특히 잡지에 환장했다. 정확히는 그 안 삽화에 푹 빠졌다. 붓과 캔버스, 물감으로 가득했던 작업실은 이제 잡지로 꽉 찼다. 무슨 수상한 모임에서 설교를 듣고 온 후부터 이 모양이었다. "화가면 화가답게 행동하는 게 어때? 그림 타령을 해야지, 왜 만날 잡지 타령인가?" "자네도 뭘 모르는군." "참나. 그림은 아예 접으려고? 잡지사 기자라도 하려고 해?" "요즘 시대의 예술은 이 잡지 안에 있었어. 그걸 깨달았어." 하! 황당함에 헛기침이 나왔다. 이곳 영국은 아직도 낭만주의와 표현주의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가만히 보면 속이 막 뜨거워지는 그런 화풍이다. 요즘 뜨는 미국은 추상회화를 밀고 있다. 솔직히 자기들도 무슨 뜻인지 잘 모를 그런 기법이다.
이 인간은 소파에 누워 내가 사 들고 온 잡지를 뒤적였다.
"잡지야말로 대중의 모든 욕망이 담겨있단 말이지. 재밌네, 재밌어…."라며 혼잣말을 했다. "지금 그럴 때가 아니고…." "됐고, 가위나 가져와 보셔." 그는 멀뚱하게 서 있는 나를 향해 팔을 휘적였다. "앙리 마티스 혼이라도 들어왔나. 색종이도 같이 갖다줘?" "빨리!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어. 잘라야 할 건 여기에 있어." 그는 내 조롱을 받아치곤 잡지를 흔들었다. 그가 펼친 잡지 종이에는 커다란 남성 보디빌더가 근육을 과시하고 있다. 나는 마지못해 가위를 건네줬다. 그는 잡지에서 이 보디빌더를 싹둑 잘라냈다. "어딨더라…." 그는 잡지 더미를 뒤적였다. 너덜대는 잡지를 몇 권 꺼내왔다. "유치원 학예회에 나가려고? 내 딸 친구가 여기 있었구먼." 나는 빈정댔다. 그는 종이를 후루룩 넘겼다. "여기 있다!"며 기뻐했다. 종이에서 요염한 포즈의 여성 모델을 떼어냈다. "그다음은 털코트 사진을 잘라서 옷 입히기라도 할 건가?" 그는 내 독설을 또 무시했다.
그렇게 잡지만 수십 권을 뒤적였다.
손에 침을 발라가며 넘겨댔다. 잡지 속 TV, 녹음기, 진공청소기 따위를 마구잡이로 잘랐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섰다. 그간 잡지에서 자른 모든 것을 바닥에 늘어놨다. "이번에는 퍼즐이야? 갓난쟁이 내 아들도 데려와야겠네. 근데 난 지금 누구랑 얘기하고 있는 거야?" 나는 투덜대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그는 말없이 잡지에서 자른 사진을 뒤섞었다. "이봐, 괜찮아?" 나는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친구. 오늘은 이만 가줄 수 있어? 기막힌 영감이 찾아왔어. 미안해. 정말 미안하네." 그가 헐떡이듯 말했다. "미쳤어, 정말?" 나는 저항할 틈도 없이 그에게 떠밀렸다. 집 밖으로 던져지듯 나왔다. 문이 쾅 닫혔다. 그는 정말, 정말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날 리처드 해밀턴(1922~2011)은 잘린 잡지 사진을 '재미있는 영감'에 따라 배치해봅니다. 작품이 됩니다. 무려 팝아트 조상님으로 재탄생합니다. ▷예술은 고상해야 한다 ▷예술은 인상 쓰고 감상해야 한다 ▷예술은 미술관·박물관에서 각 잡고 봐야 한다는 말은 이제 '진리'의 왕좌에서 내려옵니다.
리처드 해밀턴, 도대체 무엇이 오늘날의 가정을 이토록 색다르고 매력 있게 만드는가 |
육감적인 한 쌍입니다.
탄탄한 몸의 남성은 근육을 자랑합니다. 소파에 앉은 반라 여성은 머리를 매만집니다. 집안 곳곳에서 TV, 녹음기, 진공청소기, 햄 통조림 따위가 보이지요. '포드' 자동차 로고도 있습니다. 벽에는 만화 포스터를 걸었습니다. 창밖으로 영화관도 볼 수 있습니다. 작품은 직관적입니다. 적어도 무엇이 어디 있는지는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의 칸딘스키와 몬드리안, 잭슨 폴록 등이 이끈 추상회화와 견줘보면 선녀 같습니다. 이 작품은 나름의 해석도 해볼 만합니다. 중산층 가정집입니다. 남성의 몸은 우락부락합니다. 그 시대 '쿨가이'의 필수품입니다. 그런 이가 막대 사탕을 테니스 라켓처럼 들었습니다. 우스꽝스럽지요. 육감적인 여성은 가까이에서 보니 정체 모를 모자와 액세서리를 뽐내고 있습니다. 별난 광경입니다. 다시 보니 TV와 전화기, 진공청소기 등 모두 대량생산체제에서 쏟아지는 '핫 아이템'입니다. 집도 굳이 영화관 옆을 택했다는 의심이 듭니다.
풍요 속 자아도취에 빠진 두 사람은 어느새 주변 액자, 가구와 다를 바 없는 상품으로 전락합니다.
그 시절 유행을 좇아가는 중산층 부부를 풍자한 겁니다. 촛불은 신의 눈, 오렌지는 부의 상징, 녹색은 여유로움의 색…. 스무고개 풀듯 다가서야 하는 옛 그림과 비교하면 해석이 골치 아플 정도는 아니지요. 작품은 도발적입니다. 무엇보다 재미있습니다. 리처드 해밀턴의 작품 '도대체 무엇이 오늘날의 가정을 이토록 색다르게 매력 있게 만드는가'입니다.
리처드 해밀턴, 도대체 무엇이 오늘날의 가정을 이토록 색다르고 매력 있게 만드는가(일부) |
이 작품은 품는 주제만큼 제작 기법도 흥미롭습니다.
비교적 쉽게 만들었습니다. 모네나 고흐 작품은 흉내도 못 내겠는데, 이 정도면 도전은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신문, 잡지에서 각각 잘라 붙인 게 대부분입니다. '풀로 붙인다'는 뜻의 콜라주(collage) 기법입니다. 그러니까 남성과 여성, 포드 로고와 녹음기 모두 기사 내지 광고에 있는 사진이라는 겁니다. '창작의 고통' 속 연필이나 붓을 들고 만든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작품 속에는 대단한 무언가도 없지요.
익명의 사람과 일상 용품 등 대중적인 요소뿐입니다. 제우스, 그리스도 등 신이 없습니다. 헤라클레스나 시저 같은 신화·역사 속 인물도, 만개한 꽃 같은 예쁜 오브제도 없습니다. 이쯤 되면 "그간의 '예술 법칙'을 따른 게 하나도 없잖아! 이게 무슨 예술이야?"라는 의문도 듭니다.
리처드 해밀턴(1922~2011) |
팝아트는 파퓰러 아트(Popular Art·대중예술)의 줄임말입니다.
해밀턴 덕에 팝아트란 용어가 나왔습니다. 해밀턴의 작품 속 근육질 남성이 든 막대사탕이 보이지요. 'POP(팝)'이 선명하게 박혀있는데요. 미술비평가 앨러웨이가 이를 보고 작품을 '팝아트'라고 칭한 겁니다. 팝 아트의 핵심은 대중성입니다. 팝 아트의 재료는 광고, 보도사진, 영화, 만화 등 대중문화입니다. 창조의 고뇌도 덜합니다. 좋아 보이면 그것만 가위로 쏙 잘라 갖다 쓰는 식입니다. 똑같은 재료를 대량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광고, 포스터 등 계속 찍어내면 되니까요. 마음만 먹으면 무한대로 찍어낼 수도 있는 겁니다.
그 시절로 보면 파격적인 실험입니다.
미술은 그저 재밌어도 충분하고, 작품 활동은 골방에 박혀 하세월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걸 보여줬거든요. 예술은 멋지고도 속물적인, 때로는 천박해 보이기까지 하는 일상 재료를 갖고도 쉽게 꽃 피울 수 있다는 점 또한 증명합니다. 이와 관련해 해밀턴은 "엘비스 프레슬리와 피카소 사이에 서열은 없다"라고도 주장하지요. 애초 예술의 영역에선 내가 잘났고 네가 못났고가 없다는 뜻입니다.
잭슨 폴록, no.5 |
시간을 거슬러 가면요.
먼 이집트 미술부터 그 시절 유행하던 추상표현주의까지, 예술의 지향점은 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주제와 소재, 기법이 크게 바뀔지언정 '미술은 고상해야 한다', '예술은 고된 창작 과정 끝에 태어난다'는 말은 진리였습니다. 하다못해 동네 들꽃이든, 마음속 심연(深淵)이라도 쫓아 성의를 보여야 했습니다. 그래야 잘난 미술의 범주에 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뭔 이미 완성돼서 나온 광고 쪼가리를 또 자르고 붙이고…. "미술이 장난이야?"라는 욕을 듣기 딱 좋았습니다.
리처드 해밀턴, Palindrome |
팝아트는 미디어가 날뛰고, 대량생산체제가 일상화되는 현대 사회를 맞아 고개를 든 기법입니다.
광고 등 대중문화 산업은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이후 껑충 성장합니다. 승전국 중 상당수가 '전쟁 특수' 호황을 누렸고, 덕분에 대중의 씀씀이가 커진 덕입니다. 이쯤부터 미술계도 지각 변동을 겪습니다. 먹고 사는 걱정을 덜게 된 대중도 슬슬 미술에 관심을 둡니다. 대중은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미술을 원합니다. 더욱 새롭고, 보다 '힙'한 미술을 찾아 헤맵니다. 이런 가운데, 해밀턴이 1956년 영국에서 열린 '이것이 내일이다(This is Tomorrow)' 전시 중 팝아트 '도대체 무엇이 오늘날의 가정을…'를 선보인 겁니다. "이거다!" 현대사회의 대중은 해밀턴의 이 작품을 보고 팝아트에 주목합니다. 팝아트는 이러쿵저러쿵해도 그 시절 가장 힙한 예술임은 틀림없었거든요. 근엄함이 아닌 경쾌함, 무거움과 진지함보다 가벼움과 상업성, 이상한 기호 말고 누구든 알아볼 수 있는(심지어 우리 집에도 있는!) 컬러풀한 이미지는 말 그대로 대중적인(popular) 미술이었습니다. 지루한 교훈, 진부한 가르침도 없었습니다. 재치 있는 환호, 위트있는 풍자뿐이었습니다. 잡지를 잘라 만든 만큼 접근성도 낮았습니다. 대중이 거리낌 없이 즐길 수 있는 예술이었습니다. 비평가들이 "미술 모독이다!"라고 소리쳐도 상관없었습니다. 대중 눈에 이들은 어차피 무슨 뜻인지도 모를 추상회화 따위나 띄우던 양반들이었습니다.
그간 미술은 왕과 귀족 등 '높은 사람'들의 영역이었지요.
이들은 체면 때문인지, 뭐든 '있어 보이는' 그림을 쫓아다녔습니다. 하지만 대중은 그들과 달리 고루하지 않습니다. 옛날 예술에서 억지로 재미를 찾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너무 복잡하면 짜증나고, 너무 웅장하면 비싸기만 해서 부담스러울 뿐이었습니다. 실제로 그 시절 대중의 시선에는 "요즘 뜬다!"는 추상표현주의 또한 기득권이 만든 또 하나의 가짜 신화일 뿐이었습니다.
앤디 워홀, Marilyn Diptych |
그런데 영국이 웬 팝아트? 미국 화가 앤디 워홀이 팝아트 전도사 아니야?
이런 생각도 들 수 있습니다. 팝아트가 눈 뜬 곳은 영국입니다. 다만 팝아트가 꽃을 피운 곳은 대서양 건너 미국이 맞습니다. 미국은 워홀부터 키스 해링,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 걸출한 팝 아티스트를 키웠습니다. 메릴린 먼로, 엘비스 프레슬리, 캠벨 수프, 햄버거와 핫도그 등 팝아트를 상징하는 이미지도 만들었습니다. 팝아트가 자기에게 가장 잘 맞는 곳을 자연스럽게 찾아간 겁니다. 2차 대전 뒤 초강대국이 된 미국이야말로 대중오락과 대량 생산품이 넘실대던 나라였거든요. 40대 초반 케네디도 고상한 방식 대신 TV 이미지 정치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된 곳입니다. 대중은 자신감에 가득 찼습니다. 역동적이었습니다. 대중의 소비를 먹고 사는 팝아트가 정착지로 삼기에 더할 나위 없는 신대륙인 셈입니다.
리처드 해밀턴, 스윈징 런던[테이트] |
1967년, 영국 록밴드 롤링스톤스 소속의 믹 재거와 유명 화상(畫商) 로버트 프레이저를 언론이 작정하고 다룹니다.
이들은 불법 약물 소지 혐의를 받았습니다. 미심쩍은 파티에서 체포됐지요. 초특급 스타, 최고로 잘 나가던 아트 딜러가 경찰 후송차로 가는 건 단연 화제였습니다. 이때 한 기자가 카메라를 높이 들어 단독 보도사진을 냅니다. 민트색 양복을 입은 이가 재거, 그 옆 사람이 프레이저입니다. 재거는 수갑 찬 손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카메라가 싫었거나, 플래시에 눈이 부셨기 때문일 겁니다. 수갑에 같이 묶인 이가 프레이저입니다.
리처드 해밀턴, 스윈징 런던[테이트] |
해밀턴은 이 장면으로 팝아트의 정석을 보여줍니다.
먼저 해밀턴은 대량 생산된 재거와 프레이저의 굴욕(?) 보도사진을 마구 갖고 옵니다. 신문, 잡지 등 구할 수 있는 곳은 차고 넘쳤습니다. 자신의 아트 딜러기도 했던 프레이저의 사무실까지 찾아가 쌓인 종이들을 싹 다 긁어왔습니다. 해링턴은 이 사진을 온갖 기법으로 변주(變奏)합니다. 페인팅, 드로잉, 동판화, 실크스크린 등으로 재창조합니다. 아예 만화 캐릭터처럼 그려봅니다. 수갑 부분만 금속으로 바꿔보고, 호송차 창문 밖에 새로운 풍경도 넣어봅니다. 온갖 신문 속 이들을 다룬 기사를 오려내 콜라주도 해봅니다. 해밀턴은 이를 '스윈징(Swingeing·야단치는) 런던' 연작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리처드 해밀턴, Portrait of Hugh Gaitskell as a Famous Monster of Filmland |
해밀턴의 말을 되짚어볼까요.
그는 팝아트가 그간 미술의 차이로 ▷대량생산성 ▷대중성 ▷위트 등을 꼽았지요. 해밀턴은 재거와 프레이저가 담긴 보도사진을 다채롭게 재창조하면서 팝아트의 확장성과 대량생산성을 뽐냅니다. 슈퍼스타 재거가 벌인 약물 스캔들을 예술 소재로 삼으면서 팝아트의 대중성도 과시합니다. 1960년대 활기찬 영국을 표현할 때 쓰던 '스윙잉(Swinging) 런던'을 비틀고 풍자한 제목으로 팝아트 특유의 위트까지 자랑합니다.
비틀스, 화이트 앨범 |
이번에는 영국 록밴드 비틀스의 9번째 앨범을 보겠습니다.
1968년에 나온 이 앨범 커버는 흰색 배경에 '더 비틀스(The Beatles)'란 표시가 끝입니다. 별명도 '화이트 앨범(White Album)'입니다. 이 앨범은 판매와 함께 독특한 디자인으로 시선몰이를 합니다. 당연히 곡도 좋았습니다. 미국음반산업협회에 따르면 '더 비틀스' 앨범의 판매량은 1900만장입니다. 해밀턴이 이 파격적인 앨범 커버를 창조했습니다. 앞서 해밀턴은 비틀스의 멤버 폴 매카트니와 친해집니다. 매카트니가 해밀턴의 문제작 '스윈징 런던'에 감동한 덕입니다. 해밀턴은 매카트니가 제안해 비틀스 앨범 커버와 포스터를 디자인한 겁니다. 해밀턴은 이번 건을 통해 팝아트의 심플함을 보여줍니다. 세상이 바뀐 것을, 이제 작업실에 박혀 종일 붓질한 끝에 나오는 예술만 예술이 아니라는 것을 재차 증명해버립니다.
리처드 해밀턴 |
해밀턴은 영국 런던 토박이입니다.
통통 튀는 해밀턴이 카리스마 폭발의 터너, 베이컨과 같은 국적을 가진 것부터 재미있는 일입니다. 해밀턴은 1922년 런던에서 세상 빛을 봅니다. 아버지는 자동차 대리점의 운전사였습니다. 넉넉하지는 않은 집안이었지요. 그는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흥미를 갖습니다. 해밀턴은 "나는 10살쯤부터 그림 그리는 일에 관심을 가졌다. 나는 도서관에서 미술 수업이 열린다는 전단을 봤다. 선생님은 '이 수업은 어른들의 수업이고, 너는 어려서 참여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내 그림을 보고 다음 주부터 나오라고 했다"고 회상합니다. 재능을 꽃피운 해밀턴은 16살에 왕립 아카데미로 갑니다. 그런데 얼마 안 돼 2차 세계대전이 터져 아카데미도 문을 닫습니다. 그는 1946년,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다시 아카데미로 갈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해밀턴은 곧 "학교 규정을 안 지켰다"는 이유로 퇴학당합니다. 해밀턴은 이와 관련해 "완전 미치광이가 (아카데미를)운영했다. 승마바지를 입은 그는 채찍을 들고 거닐었다. 무서웠다"고 토로했습니다.
리처드 해밀턴, $he [국립현대미술관] |
이후 여러 곳을 돌며 배움을 이어가던 해밀턴은 곧 '터닝 포인트'를 맞이합니다.
1952년, 영국의 전위적 미술 단체 '인디펜던트(Independent)' 그룹에 합류한 겁니다. 런던 현대예술원(ICA) 멤버 주축의 이 그룹은 광고, 영화부터 팝 음악, 공상과학소설까지 대중문화에 대해 폭넓게 연구했습니다. 해밀턴은 이곳에서 특히 에두아르도 파올로치와 가까워집니다. 해밀턴이 팝아트의 아버지라면 파올로치는 할아버지쯤 되겠습니다. 그간의 예술과 팝아트 사이 가교 구실을 한 인물입니다. 해밀턴은 그런 파올로치에게 싹둑 오려낸 광고를 활용한 콜라주의 영감을 얻습니다. 이 밖에 산업기술 문명에 관심을 둔 존 뵐커(건축가·디자이너), 존 맥헤일(미술가·사회학자) 등과도 교류하며 시야를 넓힙니다. 그리고 대망의 1956년, 인디펜던트 활동의 결산과도 같던 '이것이 내일이다' 전시에서 해밀턴은 '도대체 무엇이 오늘날의 가정을…'을 내걸어 팝아트 시대를 엽니다.
해밀턴은 무한한 잠재력의 땅, 미국으로 갑니다.
1962년, 아내 테리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뒤 상실감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새로운 활력이 절실한 시기에 이사를 택한 겁니다. 해밀턴은 이곳에서 마르셀 뒤샹과 친해집니다. 뒤샹은 어떤 면에선 자기보다 더한 인간이었습니다. 감격합니다. 해밀턴은 고향에도 뒤샹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습니다. 해밀턴은 런던 테이트 갤러리에서 뒤샹의 회고전을 기획합니다. 해밀턴은 그렇게 팝아트의 선구자면서 개념미술, 더 나아가 현대미술의 촉진자 역할도 합니다. 해밀턴은 여러 예술기관에서 교편도 잡았습니다. 런던 왕립 예술 아카데미와 센트럴 세인트 마틴, 뉴캐슬의 킹스 칼리지 등입니다. 그는 제자 양성에 진심이었습니다. 해밀턴의 제자 중에는 피터 블레이크, 데이비드 호크니도 있습니다. 제자 리타 도나와는 연애 끝에 재혼(!)도 합니다.
리처드 해밀턴, 시민 |
해밀턴은 팝아트를 활용해 정치적 작품도 다수 만듭니다.
대중성이 큰 팝아트를 계몽의 도구로 쓸 수 있을지 실험한 듯합니다. 그저 격정적 감정이 들면 어떻게든 표현해야 하는 성격이었을지도요. 해밀턴의 작품 '시민'이 대표 사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보이는 한 남성이 감방에 있습니다. 벽에는 갈색 물감이 낭자합니다. 당시 해밀턴은 1980년대에 한 TV 다큐멘터리를 인상 깊게 봤는데요. 북아일랜드 메이즈 교도소에서 발생한 IRA(임시 아일랜드 공화국군·Provisional Irish Republican Army) 죄수들의 투쟁을 다룬 프로그램이었지요. 아일랜드 독립운동을 벌이다가 잡혀 죄수가 된 이들은 영국 내각에 "우리는 범죄자가 아닌 정치범으로 대우하라"고 요구합니다. ▷죄수복을 입지 않은 권리 ▷노역에 동원되지 않은 권리 등을 내겁니다. 이들은 단식합니다. 각종 생리현상을 감방에서 처리합니다. 배설물을 감방 벽에 바르는 투쟁까지 서슴지 않습니다.
리처드 해밀턴, 충격과 공포 |
그러니까, 해밀턴이 작품 속에 풀어놓은 갈색 물감은 배설물을 표현한 겁니다.
해밀턴은 TV에서 본 IRA 죄수들의 '불결 투쟁'이 안타까웠습니다. TV에 실린 이미지를 더 힙하게, 더 대중적으로 풀어낸 겁니다. 해밀턴은 2003년에는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라는 작품도 공개합니다. 2003년 영국과 미국 등 서방군의 이라크 바그다드 대공습을 다룬 겁니다.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가 카우보이 셔츠를 입은 채 총을 쥐고 있지요. 해밀턴의 팝아트는 이러한 이슈가 대중에게 닿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리처드 해밀턴, 자화상 |
말년을 맞은 해밀턴은 조판 미술과 후진 양성에 힘을 쏟습니다.
해밀턴은 2011년 89세 나이로 사망합니다. 그가 생전에 한 인터뷰 중 인상적인 대목이 있는데요. 해밀턴은 팝아트 선구작이 된 '도대체 무엇이 오늘날의 가정을…'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때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그 작품? 난 그게 좀 지겨워졌어. 그저 작은 돈벌이를 해주는 정도야"라고 시크하게 답변합니다. 매 순간 유행의 최전선에 서야 하는 팝아티스트여서 할 수 있는 현답이었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현대 미술가로 꼽히는 데미안 허스트는 그런 해밀턴에 대해 "최고!"라고 찬사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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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잘생긴 법학 교수님, ‘이것’ 그렸더니 미술계 '발칵'[후암동 미술관-바실리 칸딘스키 편] - 추상회화 선구자 (2022.7. 23.)
23)“이건 나도 그리겠다!” 1순위 그림, 그 놀라운 비밀[후암동 미술관-몬드리안 편] - 추상회화 선구자⑵ (2022. 8. 6.)
24)스파게티 면발? 1315억에 팔린 그림, 충격적 이유[후암동 미술관-잭슨 폴록 편] - 액션페인팅 선구자 (2022. 10. 29.)
25)권총도 채찍도 버텼는데, ‘이 남자’ 행동에 무너졌다[후암동 미술관-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편] - 행위예술 특별 편 (2022. 8. 20.)
26)몸좋은 보디빌더, 거대 막대사탕 들고 ‘의문의 포즈’[후암동 미술관-리처드 해밀턴 편] - 팝아트 선구자 (2022.11.12.)
1)이건희 컬렉션, 이 ‘다섯 작품’ 놓치지 마시라[후암동 미술관-‘어느 수집가의 초대’ 출장 편] - 전시 특집 (2022. 6. 18.)
2)알코올 중독 ‘이 남자’, ‘파리’에 미치자 놀라운 일 터졌다[후암동 미술관-몽마르트 언덕 편] - 동행자 : 모리스 위트릴로 (2022. 9. 17.)
3)고흐 “슬픔은 왜 나한테만” 펑펑 울었다, 고작 2평 다락방에서[후암동 미술관-오베르 편] - 동행자 : 빈센트 반 고흐 (2022 9. 24.)
4)모네 “앞이 안 보여도 상관없어”…백내장도 못 막은 그의 ‘최후작’[후암동 미술관-지베르니 편] - 동행자 : 클로드 모네 (2022.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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