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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용의 화식열전] 노벨상 탄 버냉키의 충고…“공포가 위기를 더 키운다”
공포가 부른 ‘뱅크런’ 대공황 키워
최근 긴축 길게 보면 정상화 과정
과도한 소비위축 부실위험 더 높여

한계기업·가계 구조조정 필요하지만
증시·집값 등 자산시장 붕괴 막아야
금융시스템 유지돼 반등탄력 키울수

“뱅크런(Bank run)이 결국 대공황을 초래했다”

밴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업적을 압축하면 이렇다. 1931년 영국은 금 본위제를 포기하고 파운드를 발행해 경기를 부양한다. 미국은 금 본위제를 고수, 시장에 달러를 추가 공급하지 않는다. 은행들은 대출을 회수해서, 개인과 기업들은 예금을 인출해 달러 확보 경쟁에 나선다. 대출 부실로 은행들이 회수하는 달러가 부족한데 예금인출이 급증하자 결국 은행들이 줄도산한다. 은행 파산으로 금융시스템이 치명상을 입고 경제는 나락으로 추락하게 된다.

대공황의 정확한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들이 존재하지만 버냉키 의장이 가장 많은 연구업적을 내놓은 것만은 분명하다. 2006년 연준 의장에 취임한 버냉키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투자은행(IB) 리만브라더스가 파산하자 유동성 경색을 막기 위해 시장에 대규모로 달러를 공급한다. 그 결과 글로벌 금융위기를 대공황 보다 짧은 기간에 극복할 수 있었다는 평가를 얻는다.

버냉키는 임기말이던 2013년 양적완화 종료를 주장한다. 유명한 ‘버냉키 쇼크’다. 또다른 위기에 봉착했을 때 통화정책으로 대응하려면 비정상적인 초저금리를 성장 수준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퇴임 후에도 버냉키는 통화정책 보다 재정정책으로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후임 재닛 옐런은 실제 기준금리를 올린다. 하지만 2018년 취임한 파월은 경기침체 우려에 다시 금리를 내리고, 2020년 3월 코로나19 대유행에 맞서 버냉키 보다 더한 양적완화에 나선다.

파월은 지난 해 인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되자 ‘일시적(transitory)’이라고 진단했다. 올해 연준은 다시 금리인상에 나서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겹쳐 전세계가 엄청난 긴축 고통을 겪고 있다. 버냉키는 전쟁 등 공급문제 완화를 기다리면서 일단 수요 증가세를 둔화시켜 물가상승률을 낮추는 게 현재 연준의 목표라고 평가했다. 불황은 불가피하다고 보는 셈이다. 그러면서도 버냉키는 지금 연준의 긴축이 필요한 조치라는 대중의 믿음이 있다면 인플레가 계속 유지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노벨 경제학상은 우리가 고민해야 할 주제에 대한 연구업적을 주로 평가하고 있다. 그래서 공동수상이 많다. 경제학상은 노벨재단이 아닌 스웨덴 중앙은행이 수상자를 선정한다. 스웨덴 크로나(Krona)는 세계 주요 통화 중에서도 안전하다고 정평이 났지만 최근 1년새 달러 대비 가치가 28% 넘게 하락했다. 올해 주제를 보면 지금 닥친 어려움에 대한 스웨덴 중앙은행의 고민이 엿보인다.

전세계 경제가 지금도 어렵지만 내년에는 더 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미 생활물가가 치솟고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부동산 등 자산가격 하락의 충격까지 겹칠 가능성도 커졌다. 오랜 초저금리로 자산시장은 사상 유래 없는 장기 호황을 누렸다. 시장이 계속 오를 수만은 없다. 자산가격도 조정을 받아야 다시 오를 탄력을 갖게 된다. 지금의 시련도 과정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경제가 어렵다고 모두가 제 살길만 찾는다면 시장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며 더 큰 위기로 확산될 수 있다. 기업이 허리띠를 졸라매면 가계소득도 줄어 경제활동 전반이 위축된다. 소득이 줄면 대출부실로 금융시스템이 받을 충격도 커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같은 ‘악순환 고리’를 막을 대책이다.

불황으로 당장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 기업들이 긴축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살림에 여유가 있는 기업들까지 과도하게 씀씀이를 줄인다면 우리 경제가 더 위축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기업에 있어 비용은 임직원과 거래처 등 같은 생태계에서 공존하는 이들에게는 생존의 에너지이다. 비효율 제거는 필요하지만 지나치면 오히려 경제를 더 위축시키는 독이 될 수 있다.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어려울 때일수록 약한 곳이 가장 먼저 흔들리기 마련이다. 금리에 자극할 재정의 비효율을 제거하는 작업은 필요하지만, 위기에 취약해진 경제 인프라를 방치하면 안된다. 한계차주에 대한 정리는 필요하지만, 회생 가능성 있는 차주들은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특히 자산시장 기반을 지탱해야 한다. 근로소득 만으로는 저출산·고령화의 경제적 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 증시 지지기반을 강화해 국민의 자본손실을 최소화 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자산시장이 무너지면 연금 자산이 타격을 받게 되고 국민 상당수가 노후 위기에 노출된다. 공매도 한시금지도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다. 집 값도 거품은 제거되어야 하지만 지나치게 단기급락하도록 방치하면 금융시스템에 큰 충격을 주게 된다. 완충장치를 강구할 필요가 있다.

공포가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포기와 좌절 보다는 용기와 인내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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