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P 보다 부동산·대출 더 팽창
美 긴축 ‘저금리→고금리’ 전환
금감원, 부채위기 꼭 막아내야
대부분의 경제위기는 금융에서 비롯된다. 1997년 외환위기는 기업의 과도한 차입이 주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이후 신용카드 사태와 글로벌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 저축은행 부실사태 등도 모두 금융이 핵심이었다. 실물경제의 비효율이 금융을 통해 드러나는 양상이다.
우리 경제는 이런 위기들을 비교적 잘 견뎌냈다. 중국이라는 새로운 유효 수요가 기업들이 경쟁력을 회복하는 주요한 동력이 됐다. 기업들이 수출로 번 돈이 가계소득으로 이어지고 내수와 재정을 뒷받침했다. 이 과정에서 다시 금융이 팽창했다. 특히 가계의 차입이 급증했다.
1997년 이후 2021년까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은 215% 증가했다. G7 국가평균 107%의 2배에 달하는 고성장이다. 같은 기간 주택시가총액은 573%, 금융회사 총대출은 456% 급증했다. 총대출 가운데 가계신용 비중은 58%(20201년)에 달한다.
싸면 잘 팔리기 마련이다. 저금리가 금융팽창의 일등공신이다. 정부도 국민들에게 빚을 내서 집을 사라고 부추겼다. 2007년 이후 지난해까지 가계신용은 180% 늘었다. 같은기간 주택금융공사와 주택도시기금의 주택담보대출은 461% 폭증했다. 금융회사들은 그야말로 ‘떼돈’을 벌었다.
지난해 상장사 순이익 순위를 보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포스코, 현대차 등 ‘빅4’에 이어 금융지주 사들이 상위권을 휩쓸었다. 이처럼 돈 잘 버는 금융회사들이지만 시장가치(시가총액은)는 대부분 청산가치(순자산)를 크게 밑돈다. 자본 효율이 낮은 탓도 있지만, 부실 위험을 반영한 측면도 크다.
이제 고금리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미국과 중·러의 신냉전으로 수출기반이 되는 유효시장은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커졌다. 원자재 값도 당분간 쉽게 떨어질 것 같지 않다. 벌이가 시원치 않아지는 데 빚은 많으니 탈이 날 확률이 아주 높다. 금융부실은 실물경제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금융에서 비롯된 외환위기를 제대로 예방하지 못해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을 뭉쳐 금융감독원을 만들었다. 미국의 초강력 긴축으로 외환위기 이후 가장 엄중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금융 위기는 일단 터지면 도미노처럼 실물경제 각 분야에까지 치명상을 입힌다. 예방이 최선이다.
이복현 금감원장 취임한 지 꼭 100일이 지났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지면서 금융권의 긴장도가 아주 높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소통과 현안 파악에서 보여준 이 원장의 행보는 인상적이었다. 지난 몇 차례 정부마다 등장했던 ‘금융 홀대론’이 이번에는 잠잠하다.
지난 100일 보다 앞으로의 995일이 더 중요하다. 이 원장은 14명의 전임자가 겪지 못한 미증유의 상황에 마주할 가능성이 크다. 금융은 실물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윤석열 정부의 규제완화 기조가 뜻밖의 경로로 금융불안을 키울 수 있다. 예방을 위해서 이 원장이 오지랖을 넓힐 필요가 있다.
다가올 위험을 알리는 소리에 사람들은 귀를 잘 기울이지 않는다. 금융위기 예방에 금감원이 적극적으로 나서면 여러 불만이 나올 수 있다. 현직에서 ‘잘한다’는 소리를 듣기는 쉽지만, 현직을 떠나면서 ‘잘했다’는 평가를 얻기는 어렵다. 이 원장이 ‘잘했다’는 평가를 얻는다면 아마 금융위기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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