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비자물가(CPI)가 예상보다 많이 오르면서 전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단기 대책이나 임기응변으로 넘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듯싶다. 국가적 역량을 모아도 극복을 장담하기 어려운 위기다.
이번 미국발 물가 쇼크를 요약하면 이렇다. 이번 CPI 발표 전 시장은 이런 기대를 했다.
“유가도 내렸으니 물가 오름폭도 줄고,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계속 가파르게 올릴 수 없을 것이다”
기대는 빗나갔다. 유가와 음식료 값 상승세는 주춤해졌지만 이 둘을 제외한 근원물가(Core CPI)가 올랐다. 상품과 서비스는 물론 가장 비중이 큰 주거비용(housing cost)이 급등(전월대비 0.7%)했다.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연내 4%까지 올릴 것이란 전망에 주가는 하락하고 채권금리는 급등했다.
달러 가치는 이미 20년래 가장 높은 수준이다. 달러를 쓰지 않는 나라들 보다 원자재 수입 가격 부담이 덜하다. 수요가 줄면 가격도 떨어진다. 물가가 오르는 것은 구매력이 여전하다는 뜻일 수 있다. 금리가 올랐지만 미국 경제는 비싸진 물가를 감당해 내고 있다. 이는 각종 경제지표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8일 발표된 8월말 노동부 신규실업수당 청구건수는 석 달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며 예상치를 밑돌았다. 앞서 나온 8월 비농업 신규취업자수는 시장 기대를 충족했다. 공급관리협회(ISM)의 8월 서비스업 경기지수는 4월 이후 최고다. 유럽으로의 에너지 수출이 늘어 31년만에 경상흑자 가능성까지 점쳐진다.
달러를 쓰지 않는 나라들은 환율을 안정시켜 물가를 잡기 위해 경기 훼손을 감수하며 금리를 올려야 한다. 미국은 금리를 올렸지만 달러가 강해지면서 상대적 구매력이 더 강해졌다. 미국 재무부가 발표한 2021년 미국의 중위가구 소득은 7만800달러로 2년 연속 감소세였다. 올해에도 감소세가 유력하다. 하지만 달러 강세를 감안하면 다른 나라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더 늘어날 수 있다. 경기도 나쁘지 않는데 핵심 고정 비용인 부동산 가격 오름세까지 뚜렷해 당분간 물가 상승세는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공산이 크다. 미국은 아무래도 수요를 눌러야 물가가 잡힐 듯한데,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 의회에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통과된 데 이어 바이든 대통령은 생명공학·바이오 관련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반도체·전기자동차·2차전지 등에 이어 의약 부문에서도 미국에서 생산한 제품이 아니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뜻이다. 웬만한 첨단산업은 이제 모두 미국에 생산기반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엄청난 투자가 필요하다. 전세계 기업들이 가진 달러들이 미국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경기과열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계속 올려야 하는 상황에 올 수도 있겠다. 이 경우 다른 나라들은 투자 정체와 달러 이탈로 고통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과 러시아라는 적국을 설정하면서 시작한 미국의 경제전쟁이 달러 ‘블랙홀’을 만들고 있다. 다른 나라들이 빨려 들어가지 않으려 금리를 높이며 안간힘을 쓸 수 밖에 없다. 글로벌 경제의 구조적 변화여서 단기간에 구도가 크게 달라지기 어렵다. 앞으로 상당기간 높아진 금리를 가계와 기업이 감당해야 한다.
우리는 수출 비중이 크다. 미국이 수입 대신 자국 내 생산을 늘리면 타격이다. 우리는 가계부채 부담도 세계에서 가장 무겁다. 소득 개선이 없다면 빚 부담이 경기를 짓누르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기업이 계속 경쟁력을 갖고, 이를 바탕으로 가계가 소득을 늘려 부채를 줄일 방안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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