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아 에스랩아시아 대표가 ‘그리니박스’ 내부를 설명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
[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환경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모든 신선식품 배송 플랫폼이 ‘친환경’을 내걸고 있다. 플라스틱의 일종인 기존 보냉제를 ‘물 100%’로 바꾼 것은 기본이다. 패키지를 종이로 바꾼 뒤 드라이아이스를 넣거나, 여러 번 사용이 가능한 보냉백에 물건을 넣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소비자 눈에 보이지 않는 구간에서도 친환경적일까? 통영에서 수확한 굴이 수도권의 물류센터로 배송될 때에도 종이박스만 쓰거나 다사용 보냉백이 사용될까?
물류 스타트업 에스랩아시아의 이수아 대표는 “소비자 눈에 보이지 않는 B2B 물류 구간에서는 여전히 스티로폼 사용이 지배적”이라고 지적한다. 진심으로 환경을 생각한다면 물류의 출발 단계에서부터 환경을 생각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에스랩아시아는 최대 5년 동안 300회 재사용할 수 있는 단열 박스를 개발해 문제 해결에 나섰다. 온도 유지가 핵심인 백신 의약품 물류 분야에서 먼저 기술력을 입증해, 유명 벤처캐피탈은 물론 현대차, 산업은행 등으로부터 수백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하기도 했다.
물류 산업이 과연 얼마나 환경과 가까워질 수 있을지, 이 대표에게 물었다.
-에스랩아시아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희는 2014년에 설립된 글로벌 정온 물류 서비스 기업입니다. 단열 기술을 기반으로 콜드체인 물류에 필요한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고요. 시장에는 콜드체인 패키지(단열 박스)로 많이 알려져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창업을 하시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경영인이 되고픈 꿈이 있었어요. 가능하면 전 세계를 누빌 수 있길 바랐고요. 처음엔 금융이나 콘텐츠 쪽을 생각했는데, 이미 그쪽은 공룡 기업들이 등장해 국가 간 장벽을 많이 낮춰 놓은 상황이었죠. 그러던 중 물류가 눈에 띄었습니다. 물류는 아직 해결해야 할 물리적 장벽들이 남아 있었거든요.”
이 대표는 의류 제조·수출 기업인 세아상역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오가며 의류 원단을 발굴하고 공급하는 일이었는데, 물류에 대한 경험을 익히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렇게 자신감을 키워나가던 그는 스물여덟 젊은 나이에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에 나섰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동남아시아로 향하는 크로스보더(국경간) 물류 사업으로 시작했어요. 한국에 있는 저희 창고에서 신선 물류를 포장하고 해외로 보내는 사업이었죠. 근데 한국에서 넘어온 제품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았어요. 녹아서 넘어온 냉동식품을 다시 얼려서 판매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물류의 품질을 높이려고 단열 박스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회사 서비스를 ‘정온 물류’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신선식품 업계에서 두루 사용되는 ‘콜드체인’ 개념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콜드(cold)’라는 단어는 단순히 차갑게 유지해 주기만 하면 된다는 인상을 풍깁니다. 하지만 제품을 최적의 상태로 유지해주는 온도는 제각각이에요. 2~5도 범위에서 가장 신선하게 유지되는 식품도 물론 있지만, 전복같은 생물은 7~10도, 쌀은 25도가 좋다고 해요. 이보다 올라가거나 내려가면 품질이 떨어지죠.
이처럼 제품이 요구하는 적정 온도를 물류 과정 내내 유지해주는 걸 정온(fixed temperature) 물류라고 합니다. 저희가 개발한 단열 박스는 요구되는 기간 동안 적정 온도를 유지해 줍니다.”
에스랩아시아의 ‘그리니 에코’ 제품 이미지 [에스랩아시아 제공] |
-단열 박스의 성능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저희 제품은 ‘그리니 메디’와 ‘그리니 에코’로 나뉩니다. 그리니 메디의 경우는 마이너스(-) 70도, 즉 초저온에서부터 상온(15~25도)까지 모든 범위를 다 커버할 수 있는데요. 주로 백신과 같은 바이오 의약품 운송에 쓰이고 있습니다. 백신 의약품 물류로 사용되는 패키징 분야에선 저희가 1위에요. 시장의 과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습니다.
그리니 에코는 신선식품 배송에 쓰여요. 2~15도 사이에서 냉장, 냉동 제품의 온도를 24시간 유지해줍니다. 스티로폼을 대체하기 위해 제작된 제품으로, 스티로폼보다 더 나은 성능을 갖췄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에코’ 이름은 왜 붙었나요?
“현재 신선식품 배송에 쓰이고 있는 스티로폼은 재사용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스티로폼을 생산하고 폐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2675만t에 달하죠. 하지만 저희 단열 박스는 3년에서 최대 5년까지 재사용이 가능합니다.
예컨대 수산물 업체가 롯데슈퍼 등 유통업체에 물건을 보낼 때 저희 박스가 쓰이고요. 저희 파트너사가 롯데슈퍼에 가서 박스를 수거한 뒤 다시 수산업자에게 보냅니다. 즉, 회전 물류죠. 저희 박스는 300회 정도 재사용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저희 박스 1개가 스티로폼 168개를 대체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현재 에코 박스 3만5000개가 순환하고 있으니, 스티로폼 588만개를 줄였다고 할 수 있겠네요.”
재사용이 가능하다는 점 하나만으론 수십 년 간 신선식품 배송을 도맡아온 스티로폼을 밀어내기 힘들었을 터다. 그래서 이 대표는 성능과 공간 효율을 추가로 내세웠다.
“저희는 특수 필름 안에 미세한 입자의 소재를 넣고 진공 상태로 만든 단열재를 사용해요. 이불을 비닐에 밀봉하고 청소기로 공기 빼면 압착되는 것과 원리가 비슷한데요. 그렇게 두께를 스티로폼의 10분의1로 줄였는데, 성능은 같습니다. 3㎝ 두께 스티로폼과 3㎜ 두께 단열재의 성능이 같아요. 성능이 우수하니, 온도 유지에 필요한 드라이아이스 양도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내구성이 다소 떨어지는 단점은 있어요. 진공 포장한 이불도 비닐에 스크래치가 나면 바로 부풀잖아요. 그래서 단열재 외부를 플라스틱으로 꽁꽁 싸맵니다. 그래도 스티로폼보단 얇아요. 디자인 상 적재 용이성까지 감안하면, 차지하는 공간을 스티로폼 대비 60%까지 줄일 수 있습니다.”
-결국 플라스틱이 쓰이긴 하는군요..
“다소 아쉬운 점이긴 합니다. 그래도 저희는 제품을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듭니다. 에코 박스가 3~5년 동안 제 역할을 다하고 폐기될 운명에 처하면, 저희는 그걸 회수해 녹여 다시 새로운 에코 박스로 탄생시켜요. 물론 이 과정에서도 탄소는 배출됩니다. 그래도 매번 새 플라스틱을 쓸 때보다는 베출량을 40% 감축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만 매년 83만t의 플라스틱이 생산되고 있다고 해요. 이 중 플라스틱으로 물질 재활용되는 비중은 0.12%밖에 안 되죠. 매번 새로운 플라스틱을 석유에서 뽑아다 만드는 거예요. 최소한 저희 제품만큼은 자원 순환 시스템 안에서 굴러갈 수 있도록 해보려고 합니다.”
에스랩아시아 ‘그리니 에코’ 제품의 자원순환 과정 [에코랩아시아 제공] |
-사실 물류는 ‘탄소 중립’에 가까워지기 힘든 분야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특히 해외로 물건을 보내려면, 항공기를 띄우면서 엄청나게 탄소를 내뿜잖아요.
“상대적인 탄소 배출량을 따지면, 단거리를 날아가는 항공기가 가장 많이 탄소를 내뿜고 그 다음 장거리 항공, 선박 순입니다. 아직까진 저희도 항공편을 많이 이용하고 있어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배로는 신선도를 유지하기 쉽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점차적으로 해상 물류 비중을 높이려고 합니다. 전력이 들어오는 ‘리퍼 컨테이너’를 이용하는 동시에, 컨테이너에 들어가기 전후의 신선도를 저희 박스로 유지해주는 거죠.”
-유통 대기업들을 비롯해 수많은 기업들이 신선식품 경쟁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패키지 분야에선 경쟁 상황이 어떤가요?
“유명 신선식품 배송 플랫폼들은 주로 고객과 만나는 B2C 구간 패키지에 집중해요. 하지만 저희는 B2B 물류 구간에만 집중합니다. B2C의 경우는 고객 집 앞에 식품이 도착한 다음 5시간 정도만 버티면 됩니다. 하지만 B2B는 통영에서 잡은 물고기가 서울 내 물류센터로 이동하고, 그 다음 각 지점 마트로 이동하는 모든 과정을 버텨야 해요. 그래서 저희 제품은 24시간 버티도록 개발됐고, 그래서 은박이 둘러진 천 가방과는 성능이 다르죠.
물론 유명 신선식품 플랫폼들도 B2B 구간의 신선도를 엄청 신경 쓰죠. 하지만 전부 스티로폼을 이용합니다. 고객에게 가는 구간은 친환경적일지 몰라도, 보이지 않은 구간에서는 어마어마한 양의 스티로폼이 버려지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온라인 신석식품 플랫폼들도 저희가 영업해야 할 대상입니다.”
에스랩아시아는 지난해 말 시리즈B 라운드에서 15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빠르게 성장하는 유통 플랫폼들의 ESG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점이 높게 평가받았다. 특히 TBT파트너스, 위벤처스, 현대차 등 투자자는 차기 라운드 투자 유치가 진행될 때 투자금을 회수하는 대신 추가로 투자하며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투자자 중 현대차가 유독 눈에 띄네요. 완성차 업체가 물류 기업에 투자한 이유가 뭐였을까요?
“현대차가 전기차를 판매하잖아요. 전기차는 배터리 용량 문제가 있고 충전하는 데 시간이 걸리니, 콜드체인 물류를 수행하려면 솔루션이 추가적으로 필요해요. 그래서 저희 패키지를 봐주신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흔히 택배 차량에서 볼 수 있는 화물칸에는 단열재가 들어가는데요, 거기에 저희 기술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추가 투자 유치 계획은 있으신가요? 투자 유치 이후의 계획은?
“올해 시리즈C 라운드 투자 유치를 계획하고 있고요, 자금은 해외 진출에 투입될 것 같습니다. 지금도 해외 물류 사업을 하고 있긴 하지만 패키지 판매 실적은 없거든요. 파트너들을 찾아 저희 제품을 쓰도록 설득해야죠.
일단 저희 공장이 차려진 베트남 진출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인도를 겨냥하고 있어요. 덥고 습한 기후의 인도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콜드체인 시장이에요. 또 세계 최대 백신 회사인 세럼 인스티튜트도 인도 회사거든요. 의약품 배송도 커버할 수 있는 저희에게 기회의 시장입니다.
-꿈꾸고 계신 에스랩아시아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박스 내 온도를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이를 통해 배송의 효율과 질을 높일 수 있는 관제 물류 서비스가 저희의 넥스트 스텝입니다. 현재 콜드체인 시장은 파편화 돼 있어요. 패키지 업체 따로, 데이터 관제 업체 따로인 상황이죠. 저희가 이 둘을 통합해 콜드체인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플랫폼이 돼 보려고요.
의약품을 예로 들어볼까요. 국내의 한 바이오 기업이 미국에 있는 임상 환자에게 약을 보낸다고 하면, 지금은 국내 의료품 물류 기업이 포장을 잘 했는지부터 현지 공항에 잘 도착했는지, 병원에는 무사히 도착했는지 모든 단계마다 전화해서 일일이 확인해야 해요. 하지만 저희는 패키지부터 관제까지 모두 커버하고, 특히 박스 내부 온도까지 확인해드리는 거죠. 비싼 백신이 망가질까봐 노심초사하지 않으셔도 되는 겁니다.”
에스랩아시아의 ‘그리니 메디’ 제품 이미지 [에스랩아시아 제공] |
이 대표는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기업)을 꿈꾼다. IT기업을 표방하는 미국의 물류 유니콘 ‘플렉스 포트’을 떠올리며 “콜드체인 분야의 플렉스 포트가 되는 것이 에스랩아시아의 목표”라고 포부를 드러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뤄가는 과정에, 늘 환경에 기여하겠다고 약속했다.
“제 취미가 다이빙입니다. 동남아시아의 한 바다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할 때였는데, 작년만 해도 멀쩡했던 산호 군락이 전부 무덤처럼, 끝도 없는 잿빛으로 변해버린 거예요. 바닥이 잿빛이니, 바다도잿빛이었죠. 회사를 설립할 때만 해도 환경에 대해선 개념조차 없었거든요? 그러다 그때 정신이 화들짝 들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이긴 하지만, 회사 방향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아요. 직원 채용 인터뷰를 할 때도 꼭 물어보죠. 환경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요. 사실 절반은 생각을 많이 안 해봤다고 답하는데, 그럴 때마다 꼭 얘기합니다. 에스랩아시아에서 일하게 된다면, 우리 같이 환경에 기여할 방법을 생각해 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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