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폭등하자 3기 신도시 발표…공급확대 기조 전환
전문가 “과거 국가경영책임,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와”
초기엔 후분양 유도하다 작년 사전청약 도입…정반대 정책
대통령, 투기와 전쟁서 자신감 보이다 “안정화 실패” 사과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한마디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로 요약된다. 정권 초기엔 주택 공급이 충분하고 대규모 택지개발도 없다고 공언했지만, 이후 집값 상승세가 꺾이지 않자 정책기조를 바꿔 3기 신도시 등 대규모 주택 공급책을 내놨다. 사진은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일대 모습. [연합] |
[헤럴드경제=민상식 기자] “대규모 택지 개발은 없다.” (2017년 7월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
→ “신규 택지의 과감한 개발 등을 통해 공급을 특별하게 늘리겠다.”(올해 1월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한마디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로 요약된다. 정권 초기엔 주택 공급이 충분하고 대규모 택지개발도 없다고 공언했지만, 이후 집값 상승세가 꺾이지 않자 정책기조를 바꿔 3기 신도시 등 대규모 주택 공급책을 내놨다. 3기 신도시부터 최근 2·4 대책까지 향후 5년간 공공택지를 통한 공급 계획 물량은 약 110만 가구에 이를 정도다.
이같은 급격한 기조 변화에는 공급 확대 없이 수요 억제책만으로 부동산 시장 안정을 이루기 쉽지 않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반영됐다.
그러나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에 국민 신뢰도가 떨어지고 시장 참여자들 간에 혼선이 생기는 등 부동산 시장의 혼란은 커졌다.
문재인 정부는 정권 초기에는 규제 위주로 부동산 시장을 관리하면서 공급에 대해서는 크게 비중을 두지 않았다. 주택 공급은 충분하다는 입장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첫 부동산 대책인 2017년 8·2 대책에서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은 “서울·수도권 주택 공급량은 수요량을 상회한다. 충분하다”고 밝혔다.
과거 1·2기 신도시 같은 대규모 택지 개발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7월 100대 국정과제를 통해 국토부의 과제로 “대규모 개발사업 등 건설 위주의 정책이 아닌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주거복지와 고른 지역발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런 정책 기조는 오래 가지 못했다. 정부는 2018년 12월 1차 3기 신도시를 발표하면서 대규모 택지 개발에 나섰다. 수요 억제만으로는 서울의 치솟는 집값을 잡는 게 불가능하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침체된 건설경기 부양을 위한 목적도 있었다.
지난해 중반부터는 본격적으로 공급확대로 정책 기조를 전환했다. 작년 ‘8·4 공급 대책’을 통해 수도권에 13만2000가구를 공급한다고 발표했고, 3개월 뒤 전세시장 안정을 위한 ‘11·19 공급 대책’을 추가로 내놨다. 올해 들어선 국토부 장관을 교체한 후에는 2·4 대책을 통해 전국에 83만600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3기 신도시부터 2·4 대책까지 공급 계획 물량은 모두 205만 가구에 이른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문재인 정부도 처음부터 안정적으로 공급했다면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며 “이제 정책을 바꾸고 있지만 (향후 공급 절벽 등) 문제가 큰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정부는 최근까지 규제 위주의 주택 정책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문 대통령은 2019년 11월 MBC ‘국민과의 대화’에서 집값 문제에 대해 “전국적으로는 부동산 가격이 오히려 하락했을 정도로 안정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부동산 가격 폭등이 이어지던 지난해 1월 신년사에선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문 대통령의 발언과 달리 정부가 조정대상지역 확대 등 규제 정책을 펼칠 때마다 ‘풍선효과’로 비규제지역 집값이 급등했다. 집값 폭등은 수도권을 넘어 전국적으로 확산했고, 공급 절벽 우려로 인한 가격상승 압박은 더욱 커졌다. ‘영끌매수’와 ‘벼락거지’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는 등 시장은 혼란한 상황에 빠졌다.
결국 문 대통령은 올해 들어 부동산 정책 실패를 인정했다. 지난 1월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결국 부동산 안정화엔 성공하지 못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부동산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는 여론을 수용한 것이다.
정부는 정권 초기 선분양(집 짓기 전 분양)이 시세차익에 대한 투기수요를 낳는다며 후분양(집 지은 뒤 분양)을 권장해왔다.
2017년 10월 국토부 국정감사에서 김현미 전 장관은 “공공주택의 경우에는 단계적으로 후분양을 할 수 있도록 로드맵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후 2018년 ‘후분양 가이드라인’을 내놓으며, 후분양을 유도했다. 후분양을 하면 부실공사 등으로 소비자가 피해를 볼 위험이 낮아진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정부는 지난해 후분양과 정반대 방식인 사전 청약을 9년만에 부활시켰다. 지난해 5·6대책을 통해 3기 신도시 등 수도권 공공택지에 본청약보다 1~2년 일찍 당첨자를 선정하는 사전청약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주택을 조기 공급해 ‘패닉 바잉(공황구매)’을 잠재울 목적이었다. 오는 7월 인천계양을 시작으로 올해에만 사전청약 물량 3만 가구가 풀린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정부가 기존 주택에 대한 매수세를 안정시키기 위해 사전청약을 시행하려는 것”이라면서 “그러나 정권 말기 되면 추진력이 떨어지고 다음 정권이 되면 또 어떻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작년에는 등록임대사업자 제도도 사실상 폐지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음지에 있던 주택 임대사업자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여 과세 대상에 포함시키기 위해 임대사업자 등록을 활성화했다.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은 2017년 8월 “다주택자들은 임대사업자로 등록하게 되면 세제·금융 혜택을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작년 7·10대책서 돌연 4년 단기임대, 8년 장기임대 중 아파트 매입임대 정책을 폐지해 사업자들의 불만이 속출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집값 상승 등에 따라 정책 기조를 바꿀 때는 당연히 거기에 따른 타당성을 국민에게 설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면서 “과거의 국가경영책임은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온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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