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 싸움 변질 초래
한은, 기득권유지 집착
전금법 개정 본질 퇴색
최근 경제장관회의에서 만난 이주열(왼쪽) 한은 총재와 은성수 금융위원장. [연합] |
춘추시대 진(晉)나라 헌공(獻公)은 우(虞)나라를 공격하기에 앞서 두 나라 사이에 있는 괵(虢)나라에 길을 빌려 달라고 청한다. 괵나라는 길을 빌려주지만 우나라를 점령한 진나라 군대는 돌아가는 길에 방심하던 괵나라까지 삼켜버린다. ‘가도멸괵(假途滅虢)’의 고사다. ‘목이 멜까’ 두려워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의 얘기가 회남자(淮南子)에 나온다. 한자로 쓰면 ‘인열폐식(因噎廢食)’이다. 우리 속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와 통한다.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을 두고 금융위와 한국은행의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은성수 위원장이 화가 난다고 하자, 이주열 총재는 더 화가 난다고 받아칠 정도다. 금융위는 빅테크 결제정보를 금융결제원에서 외부청산을 해야 금융사고를 막아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은은 지급결제 제도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금융위가 금융결제원을 통해 빅테크 결제정보까지 들여다보면 ‘빅브라더’가 될 것이라는 게 한은의 논리다. 금융위는 필요한 업무라며 반박한다.
한은의 금결원 통제권을 강화하는 법안까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제출되며 결국 ‘밥그릇 싸움’의 모양이 됐다. 물론 일을 하려면 권한이 필요하다. 업무가 바뀌면 밥상 차림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앞서 업무 변화가 필요한지, 권한조정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먼저 따졌어야 했다. 그런데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전금법 개정안은 사실상 금융위가 추진 주체인데, 대표발의자는 국회 정무위원장이다. 이에 맞선 한국은행법 개정안은 한은의 입장을 모두 담고 있는데, 국회 기재위에서 발의됐다. 절차가 복잡한 정부입법 대신 빠른 처리가 가능한 의원입법을 택한 ‘청부입법’이다. 이미 수장들이 화를 내기 시작할 정도인데 금융위와 한은 간 타협이 어렵다면 여당 내에서 정치적으로 결론을 내려야 한다.
이미 금융소비자보호법도 적용 대상을 놓고 금융위와 다른 부처 간 이견이 좁혀지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번 사안도 정부 입법으로 했으면 이런 혼란은 없었을 텐데, 이쯤 되면 부처 간 협의 기능은 마비됐다고 봐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금융위가 금소법 시행령 등을 잘 활용했다면 굳이 외부청산을 강제하지 않더라도 빅테크 금융사고를 막을 수 있는 감독권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금융위가 빅테크 규제에 소극적이었고, 이번 전금법 개정의 최대 수혜가 특정 포털사라는 주장도 나오는 상황이다.
이미 금결원은 방대한 금융 결제정보를 처리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과 금융의 융합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빅테크 정보가 추가된다고 기존 지급결제 시스템의 안정이 위협받는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금융위가 ‘빅 브라더’가 될 수 있겠지만 대의명분이 확실하다면 불가피할 수도 있다.
이번 논란은 어찌 보면 언젠가 필요할지 모르지만 당장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사안일 수도 있다. 오히려 전금법 개정이 시급한 이유는 소비자에 필요한 오픈뱅킹과 마이데이터사업 등인데, 다급하지 않은 사안으로 함께 발목이 잡혔다. 본질에 대한 논쟁에는 소홀한 채 두 기관의 ‘밥그릇 싸움’만 드러냈으니 이젠 누가 ‘금(金)피아’ ‘복(BOK)피아’라고 손가락질해도 할 말이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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