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만 소액주주 1.3조 부담해야
산은 혈세로 한진칼 자금지원
최대 수혜 조원태 실부담 ‘0원’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을 대한항공에 넘기기로 했다. 그 처리방식이 오묘하다. 대우조선해양 때와 많이 닮았지만, 그 때보다 대한항공 대주주인 한진칼에 더 유리하다. HDC현대산업개발 때와 금액은 비슷하지만 실제 인수부담은 덜 하다. 대한항공 일반주주들이 사실상 인수자금을 다 대는 구조다. 아시아나항공 주주들은 균등감자 주총에 이어 양사 통합에 따른 주식교환 비율이 중요해졌다.
아시아나항공 인수주체는 대한항공이다. 돈은 2조500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로 마련한다. 현재 2조3359억원인 대한항공 자기자본은 4조8359억원으로 불어나고, 1100%에 육박하던 부채비율은 400% 대로 낮아진다. 한진칼 지분은 29.27%다. 증자 시 한진칼이 내야 할 돈은 7318억원이다. 70.73%를 가진 일반주주들이 나머지 1조7682억원을 내야 한다.
3대1 감자 후 아시아나항공 발행주식은 744만1174주다. 이를 전제로 대한항공이 신주 1억3158만주(1조5000억원, 주당 1만1400원)를 받게 되면 지분율은 64%가 된다. 감자가 부결되면 신주 발행가와 발행주식수가 달라지게 된다. 증자대금 중 5000억원은 차입금 상환에 쓰인다. 3분기말 현재 아시아나항공 부채(연결기준)는 12조8000억원이 넘는다. 증자로 아시아나항공이 자본잠식을 탈출하며 재무건전성이 일부 개선되겠지만, 대한항공은 여전히 자본보다 12조원의 부채를 진 회사를 책임지게 된다.
대한항공 대주주인 한진칼은 아시아나항공 경영권을 새롭게 인수해 독점적 사업자가 되지만 사실 자기자금은 한 푼도 들이지 않는다. 대한항공 유상증자 대금은 산은이 댄다. 돈에는 꼬리표가 없다. 일반주주들이 모두 유상증자에 응한다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고도 남는다, 이후 통합항공사 합병작업이나 대한항공의 차입금 상환 등에 쓸 수도 있다.
앞서 산은은 지난해 대우조선 지분 전량(55.7%, 5973만8211주)을 현물출자해 현대중공업과 함께 중간지주회사(한국조선해양)를 설립했고, 이어 한국조선해양이 1조5000억원의 유상증자로 대우조선을 지원했다.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 인수 과정에서 낸 자금은 한국조선해양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필요한 6000억원이 전부다. 산은이 보유한 대우조선 지분가치(약 2조1000억원)의 35% 수준이다.
결국 아시아나항공 인수대금의 실부담 주체는 대한항공 일반주주다. 돈은 댔지만 경영권 프리미엄을 누리는 것은 한진칼과 조원태 회장이다. 산은 이동걸 회장은 한진그룹 경영권의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됐다. 이번 거래의 핵심은 결국 대항한공 유상증자 성공여부다. 실권이 상당수 발생한다면 과연 이를 한진칼이나 산은이 인수할 지를 살펴야 한다.
대한항공 유상증자 신주발행가액은 청약일(2021년 3월4일) 이전 3~5거래일 가중산술평균주가에 40% 할인된 수준이 유력하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주가가 모두 통합 기대에 급등 중이어서 현재로서는 가격 수준을 가늠하기 어렵다. 할인율이 높아 차익 발생 가능성이 높지만, 발행주식 급증에 따른 가치 희석에 유의해야 한다. 코로나19 확산이 진정돼 항공업황 개선 가능성이 높아져야 성공가능성이 커진다. 그 때까지는 정부 출자와 한국은행의 대출, 즉 국민 돈으로 조성된 기간산업안정기금이 양 항공사에 지원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주도 작업인 만큼 대한항공 지분 8.14%를 보유한 국민연금도 이번 증자에 응할 것이 유력하다. 우리사주조합 20% 우선 배정을 감안하고, 대주주인 한진칼과 국민연금을 제외하면 대한항공 소액주주 8만2000명이 1조3000억원 상당의 증자 물량을 소화해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외국인 보유물량 12%를 제외해도 1인 평균 1000만원 이상이다.
한편 산은과 수은은 대한항공 전환사채(CB)로 약 1550만주를 보유하고 있다. 잠재지분율로만 14.4%에 달하지만 보통주가 아니어서 이번 증자 대상은 아니다. 전환가격은 1만7617원으로 현주가 보당 주당 1만원 가량 낮아 현재 1550억원 이상의 평가차익이 발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