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맞이해 서울역을 찾은 국군 장병들 [연합] |
군복을 입은 간부들을 거리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방위사업 비리의 중심에 현역 군인이 있다’는 사회적 인식이 언젠가부터 확산되면서 군복을 입고 부대 밖을 나서는 일이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이는 비정상적인 논리를 앞세워 여론을 왜곡시킨 결과이다. 방위사업의 한 축을 담당했던 입장에서는 군 전체에 대한 엄청난 오해에 당혹감과 황당함을 넘어 비애감마저 느껴진다. 2009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은 “리베이트만 안 받아도 무기 도입비의 20%는 깎을 수 있다”고 했다. 그 후 방위산업계는 대통령 임기 내내 꽁꽁 얼어붙었다. 이 전 대통령은 어떤 근거로 무기체계 구매방식을 판단했던 걸까. 이어진 박근혜 정부에서도 “방위사업 비리는 이적행위자”라고 규정할 때에 그 중심에는 현역 군인이 있었다. 이로써 모든 현역 군인을 이적행위자의 반열에 올려놓게 돼버린 결과를 그때는 예상했을까.
군 통수권 차원에서부터 비정상적 논리 전개가 지속적으로 이뤄지면서 이상하게도 방위사업의 중심에는 현역 군인들이 있고, 그들이 이적행위자가 돼버리는 묘한 인식의 함정에 빠져들었다. 현역 군인을 이적행위자로 만들어버린 정부 앞에서 누가 국민을 지키고 누가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할 것인가. 누가 군인을 믿고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질 것인가. 군인이 군복을 입고 시내를 활보하는 모습을 스스로 부끄럽게 만드는 나라가 또 어디 있을까.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다. 사명감과 소명의식으로 똘똘 뭉쳐 국가와 국민을 수호하고자 이 길을 선택한 이들이 군인이다.
지금 군은 옛날의 군대가 아니다. 국민도 달라졌다. 이제 우리 군은 더 이상 기억 저편에 존재했던 정권의 도구가 아니요, 힘으로 정권을 탐할 집단도 아니다. 이제는 엄정한 ‘민주적 통제’가 정착되었다. 그리고 그만큼 군 내부의 민주화도 성숙함을 넘어섰다. 최소한 그 정도로 우리 국민과 군은 민주주의 시민정신이 체화되었다. 제2, 제3의 박정희, 전두환과 같은 불행한 군인은 더 이상 나올 수 없는 시대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국가의 안위를 지키는 군은 가마솥과 같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이 솥단지를 집어삼킬지라도, 솥단지 안에서는 죽이 끓고 밥이 끓더라도, 물샐틈없는 가마솥은 외부를 완벽히 차단하고 내부를 보호하는 책임을 다한다. 금이 가고 깨진 가마솥은 더 이상 솥의 역할을 할 수 없다.
군은 국가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수호자다. 군인은 오직 국방의 안위만을 위해 노심초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이 수의로 생각하는 전투복을 입고 어깨 활짝 펴고 시내를 활보하고, 떳떳하게 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귀한 자녀들이 국민의 의무를 다할 때도 더 자랑스러울 것이다.
이제는 국민이 군을 믿어 줄 때다. 역사는 교훈으로 삼되 지금은 무한한 신뢰와 격려를 보내줄 때다. 응어리진 상처를 보듬고 다독여줄 문재인 정부의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군인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과거와는 차별화된 통수권 차원의 메시지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