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학부모 “온라인 강의, 판서 소리밖에 못 들어”
전부터 있던 사각지대가 코로나19로 드러났다는 지적도
지난 2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시·청각장애인 및 중복장애인 지원 대책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김여수 청각장애인 인권활동가가 수어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음). [연합] |
[헤럴드경제=박상현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교육부가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교 개학을 2주일 더 연기하면서 학교 외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는 맹학교·농학교 등 특수학교 장애인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장애인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18일 ‘학교가 장애인 학생들에겐 유일한 배움터’라는 점을 강조했다. 조원석 시청각장애인의 권익 옹호를 위한 손잡다 대표는 이날 헤럴드경제와 서면 인터뷰에서 “농학교나 맹학교에 재학 중인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시청각장애인 학생들에게는 학교가 사실상 유일한 학업의 장”이라며 “일반적인 학원에선 문서화된 교재 등 시각장애인을 위한 학습 자료를 제공해 주지 않고, 수어 통역이나 자막 서비스를 제공해 주지 않아 장애인 학생들은 학원에 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주희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 대표 역시 “처음 개학 연기가 됐을 때 교육부에서 EBS 영상 강의 등 재택으로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했지만 그 자료들을 시각·청각장애인 학생들이 이용할 수 없다는 게 문제”라며 “자막도 일부만 제공되고 수어 통역은 미비하다. 개학이 연기되지 않았을 때도 장애학생들은 늘 학교 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의 활동가인 김철환 씨도 “장애인 차별금지법에 학원에 대한 내용은 빠져 있어 학원에는 휠체어 등 장애인들을 케어할 수 있는 준비가 많이 안 돼 있다”며 “공영 방송인 EBS 강의는 그나마 낫지만 일반 사설 학원 온라인 강의는 전혀 접근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개학 연기로 인한 비장애인 학생과 장애인 학생간의 ‘학업성취 격차’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강복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대외협력이사는 “고3 시각장애인의 경우 비장애인 아이들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함께 본다. 수도권에 있는 대학을 가려면 수능을 안 볼 수도 없다”고 했다. 이어 “비장애인 아이들에겐 학원, 학습지 등 다양한 매체가 있지만, 시각장애인들에게 온라인 강의는 판서 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다”며 “맹학교는 점자 프린터기 등 시각장애인의 학습 접근성이 보장돼 있어 비장애인 학생들과 학력을 맞추기 위해선 학교에 반드시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 대표도 “평상시에도 장애인 학생들이 학습권의 차별을 경험하는데, 개학이 미뤄짐에 따라 학원, 과외, 온라인 강의 등의 의존도가 높아지면 비장애인 학생과 교육격차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존재하던 ‘장애학생 학습권 사각지대’가 개학 연기 등을 통해 드러나게 됐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 대표는 “이런 문제가 생기면 관심이 집중되지만 장애 학생의 교육은 늘 문제가 있었음이 핵심”이라며 “장애 학생들이 다니는 특수학교든, 통합학교든 학생들이 교육의 사각지대에 내몰려 있던 것이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 더 드러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 교육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특수학교 학생들과 일반학교 학생들과의 학습격차를 줄이기 위해 어제(17일) 전국 청각장애 특수학교 14곳, 시각장애 특수학교 13곳 교장단 대표와 협의를 통해 기존 학생 관리 위주 방침에서 학습 지원 준비 방침으로 전환하기로 했다”며 “기존 고교 수능 강의 등에서만 제공되던 자막도 올해 신규 제작 초·중학교 콘텐츠부터는 추가하기로 EBS에서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앞서 교육부는 지난 1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질병관리본부 등 전문가들이 밀집도가 높은 학교에서 감염이 발생할 경우 가정과 사회까지 확산할 위험성이 높으므로 안전한 개학을 위해서는 현시점으로부터 최소 2~3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며 “전국 학교 신학기 개학일을 오는 4월 6일로 추가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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