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 한번 전쟁에서 승리한 방법은 다시 사용하면 안 된다. 무궁한 형세의 변화를 끝없이 응용하여야 한다(故其戰勝不復 而應形於無窮)
2008년 금융위기 때의 기록들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지난 주 시장 낙폭이며, 중앙은행의 긴급 기준금리 인하며 그리고 극도의 변동성까지 닮은 꼴이다. 그럼 금리인하 처방이 과연 이번에도 통할까?
코로나19의 위협은 비우량주택저당채권(Sub-prime mortgage) 때보다 훨씬 더 복합적이다. 10년 전 위기는 금융경색에 따른 수요(demand) 부진이 원인이었다. 통화정책을 통해 자금을 공급, 금융시스템의 활력을 살리는 방법이 통했던 이유다. 이번에도 코로나19로 인한 공포가 수요 부진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같다. 장사가 어려워진 기업들에게 연명 자금을 공급한다는 차원에서 금리 인하의 효과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일각에서는 재정정책으로 소비를 자극해야한다는 논리도 나온다. 그런데 병이 무서운데 돈 준다고 나가서 소비를 할까?
게다가 이번에는 공급(supply) 측면의 문제까지 겹쳤다. 사람이 활동하지 못하면 공장도 가동이 어렵다. 지난 30년간 전세계의 생산은 글로벌 공급망 관리(GSCM)와 적기 생산체계(JIT)로 하나로 묶였다. 그 과정에서 ‘세계의 공장’이었던 중국은 코로나19 진원지이자 여전히 최다 감염국이다. 우리나라와 일본도 글로벌 생산체계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지만 코로나19 감염이 상당하다. 유럽에 상륙한 코로나19가 산업 생산시설이 집중된 독일이나 동유럽까지 확산될 경우 공급차질 여파는 더욱 커질 수 있다.
수요와 공급에서 모두 위기가 발생하는 것은 극히 보기 드문 경우다. 국제통화기금(IMF)와 세계은행이 동시에 성장률 전망을 크게 낮추고, 금융위기 때도 기준금리를 웃돌았던 미국 국채(10년만기) 금리가 사상 최초로 1% 아래로 떨어진 점도 이례적이다. 전세계의 빚은 이미 금융위기 직전 수준을 넘어섰다. 특히 이른바 은행이 아닌 펀드 등을 통한 사적대출(private debt)이 전세계적으로 급증한 것도 처음이다. 사적 대출은 부실이 발생해도 금융기관 자금투입으로 막기 어려운 구조다. 해외에선 급증한 빚이 새로운 위기의 ‘땔감’이란 비유도 나오고 있다. 미증유의 사례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지난주 급락했던 증시가 금주 상당부분 반등했다. 과연 예전처럼 ‘V자’ 반등을 이뤄낼까? 아니면 더 하락한 후 ‘L’자형 국면으로 이어질까. 10년 전보다 더 많은 금융자산이 연금과 펀드 등을 통해 쌓였지만, 국내 금융기관에서 현 상황에 대한 적극적인 조언을 듣기는 어렵다. 긴급재난 문제 같은 서비스가 금융에는 없다. 최근 만난 시중은행의 한 최고경영진의 얘기다.
“위험해지니 (고객에) 팔라고 했다가 예상과 달리 가격이 오르면 우리만 욕을 먹습니다. 그러니 ‘지켜 보자’고 하거나 ‘최종 투자 판단은 투자자의 몫’이란 말 밖에 하지 못합니다”
상품에 가입하라고, 투자하라고 권한 건 은행이지만 책임질 수 있는 행위는 하기 싫다는 얘기다. 사실 해외파생결합증권(DLF) 사태도 그래서 커졌다. 문제가 터지기 전 몇 년간은 DLF는 계속 수익이 났다. 위험이 발생해도 상황설명을 충분히 하지 않았고, 할 필요도 없었다.
미국의 기준금리 전격 인하에도 뉴욕증시는 하락했다. 유럽과 일본은 이미 기준금리가 ‘제로’ 이하여서 통화정책 수단도 거의 없다. 경제를 위협하는 코로나19의 성격은 ‘비대칭전력’이다. 전염의 정도가 얼마나 갈 지도 아직 예측이 어렵다. 백신이나 치료제나 나오기 전까지는 위험이 아닌 불확실성의 영역이다. 섣불리 반등을 기대하기 보다는 일단은 위험자산 가격의 하락 위험에 대비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그 동안 수익이 났다면 그것만이라도 안전하게 지키는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물론 투자 의사결정은 투자자의 몫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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