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8월 한가위면 설날과 더불어 대한민국에서는 가장 큰 명절로 꼽힌다. 말 그대로 추석은 가을 저녁을 뜻하며, 더 나아가 그 중 가장 달빛이 좋은 저녁이라는 밝은 명절의 의미를 갖고 있다. 또 한가위라 함은 가을 한가운데 날이라는 뜻으로 연중 명절 중 으뜸으로 꼽힌다. 햇곡식으로 정성들인 음식을 조상에게 올렸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처럼 오곡이 익는 계절이라 풍성한 식재료가 있었으며 이날처럼 잘 먹고 잘 입고 즐기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새삼 간절해진다고 한다. 지금이야 발렌타인데이나 크리스마스가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더 큰 행사처럼 느껴지겠지만 먹는 것이 귀했던 불과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온갖 음식을 준비해 차례를 지내고 가족 친지가 모두 모여 즐거운 한 때를 보내던 그런 명절은 지금 세상에서는 많이 보기 힘들어졌다.
지금 시대의 추석은 한동안 못 보고 지낸 친지가 그저 서로 얼굴 정도 보면 다행이며, 어린이들은 스마트폰 속에 빠져 종일 게임 등에 빠져 있고 연휴로 인해 인천국제공항의 출국장은 해외 관광객들로 붐비는 시기 정도이다. 과연 한 밥상머리에 온 가족이, 형제 자매가 식사를 해볼 수 있는 기회나 시간은 언제인가? 추석이라도 설날이라도 있으니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동양에서 말하는 차례(茶禮)는 말 그대로 차 문화가 강한 중국에서 왔음이 분명하다. 조상에게 따뜻한 차를 올려 예를 표했을 것이다. 이런 문화가 우리나라로 넘어와 못살고 배고팠던 시절 자기만족이나 남에게 보여주기 식의 거한 상차림 예절로 변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못 살던 시절 오곡 과일이 풍성한 가을 한가운데 추석만이라도 가족끼리 어울려 ‘음식’을 주제로 조상에게 예를 표하고 그 음식을 가족 친지와 나누던 때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이런 보여주기 식의 상차림 문화와 개인주의 사회가 상충하는 과도기이다. 핵가족으로 구성된 가족은 조상에 대한 차례의식 보다는 가족 여행을 먼저 생각하게 됐고, ‘조율이시’로 대표되는 상차림은 갈수록 기후 변화에 못 이기는 형국이다. 가까운 미래는 아닐지라도 머지않아 우리 차례 상에도 열대 과일이 점령할 시기가 분명 올 것이다. 이는 잘못된 상차림이라기보다 시대상을 자연스럽게 반영한 상차림이라 말해야 할 것이다.
우리 선조들이 지내온 추석 차례 문화가 겉치레가 가득하고 허례로 표현되더라도 꼭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가족 친지가 모이는 문화를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도시 생활에 팍팍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많은 도시인들에게 추석은 국가 공휴일의 의미가 더 강하다 하겠지만 한 번쯤은 잊고 지내던 우리 가족과 친지들의 안부와 그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물어보고 들어볼 기회는 추석이나 설날이 최고일 것이다.
음식을 얼마나 차리느냐? 누가 차례 음식을 하느냐? 이런 스트레스보다는 내 가족과 친지의 의미를 한 번 더 되새기고 우리 아이들에게 진정한 추석의 의미를 선사해 주는 시간으로 이번 추석을 맞이하면 더 없이 좋을 것이다. 또 소외된 이웃이나 고향을 멀리 떠나온 친구나 주변 직장 동료들과 그 따뜻한 추석의 마음을 나누는 시간으로 기억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