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참의장은 대한민국 군 최고사령부인 합동참모본부가 개최하는 합동참모회의의 의장이다. 합동참모회의에는 육해공군 참모총장 등 3명과 합참의장이 참여하며, 4명 전원의 찬성으로 의사를 결정한다.
해병대 관련 사항을 심의할 때는 해병대사령관, 그외 특정 작전부대 관련 사항을 심의할 경우 해당 작전사령관을 배석시킬 수 있다.
합참의장은 육해공군의 현역 군인 중 가장 높은 계급인 대장(별넷)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 합참의장은 현역 군인으로서 군 작전권인 군령권의 최종 결정권을 갖는다.
군령과 관련해 국방부 장관을 보좌하는 임무를 맡지만, 통상 국방부 장관과 동등한 수준의 예우를 받는다. 그래서 정부부처 장관 이상이 통과해야 하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합참의장도 받게 돼 있다.
정경두 합참의장 후보자가 18일 오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질의에 답하던 중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모습이다. [사진제공=연합뉴스] |
군 명령 체계는 크게 군정권과 군령권으로 나뉜다. 쉽게 말해 군정권은 인사권, 군령권은 작전권이다.
▶합참의장은 최종 군령권자=군정권은 국가원수로서 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국방부 장관→육군참모총장, 해군참모총장, 공군참모총장→육군 제1야전군사령관, 육군 제2작전사령관, 육군 제3야전군사령관, 해군 작전사령관, 공군 작전사령관, 해병대사령관의 단계로 발휘된다.
군령권은 대통령→국방부 장관→합참의장→육군 제1야전군사령관, 육군 제2작전사령관, 육군 제3야전군사령관, 해군 작전사령관, 공군 작전사령관 단계로 발휘된다.
합참의장의 소관 업무는 작전권에 관한 사항이다. 현재 평시작전권을 합참의장이 가지고 있고, 주한미군사령관이 가지고 있는 전시작전권이 한국 측에 이양될 경우 그걸 받는 주체가 합참의장이다.
그래서 합참의장 인사청문회에서는 고위 공직자에게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도덕성, 합참의장이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작전권 운용 능력, 합참의장으로서의 직무수행 능력이 검증의 주 내용이 돼야 한다는 게 공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실제 이날 실시된 합참의장 인사청문회에서는 합참의장이 아닌 국방부 장관이나 대통령에 대한 인사청문회인 듯한 질의가 이어졌다. 국회 국방위 소속 국회의원들이 과연 합참의장의 역할과 권한을 사전에 인지하고 인사청문회에 임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이날 청문회에서 국회 국방위 소속 정진석 의원(자유한국당, 충남 공주부여청양)은 ‘외교적 협상 수단으로 한미연합훈련 축소나 중단을 검토하고 있느냐’, ‘주한미군 철수 고려하는 것 아니냐’ 등의 질문을 던졌다.
한미연합훈련 축소나 중단, 주한미군 철수 등의 문제는 국가 대 국가의 사안인 만큼 대통령 선에서 결정할 문제다. 합참의장이 답변할 사안이라고 하기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런 질문이 나오자 정경두 합참의장 후보자는 자리가 자리인 만큼 의례적인 답변을 해야 했다. 이 질문에 정 후보자는 실제로 “그런 부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답변했다.
▶대통령이나 국방장관이 어울릴 합참의장 인사청문회=우상호 의원(더불어민주당, 서울 서대문갑)은 ‘전술핵무기 배치가 미국의 용인을 받아야 가능한 것이냐’고 질문했다.
전술핵무기의 한반도 배치 문제 역시 대통령의 소관 사항이다. 합참의장은 대통령이 배치를 결정할 경우 해당 전술핵무기를 ‘작전적으로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할 것이냐’ 차원의 결정을 내리면 된다.
그러나 이런 질문이 나온 마당에 정경두 후보자는 어떻게든 또 답변을 해야 했다. 그는 이번에도 “정책적으로 비핵화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본다”는 원론적 답변을 내놨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만 갔다.
합참의장 후보자가 답할 수 없는 수준의 질문을 받고 마지못해 ‘모범답안’을 내놓으며 상황을 모면하는 정도의 모습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레드라인’에 대한 의미를 의원들에게 풀이해주는 역할까지 맡았다. 물론, 역시 원론적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다.
정경두 후보자는 “대통령님께서 말한 레드라인의 의미는 북한에서 치킨게임처럼 막다른 골목으로 달려가는 위기 상황을 최대한 억제시킬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로 말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국방부 장관→합참의장 라인의 군령권자로서 상관의 발언을 해석, 풀이하는 역할을 맡은 셈이다. 하급자가 상급자의 언어를 공개적으로 풀이하는 역할은 상당히 까다로운 일이면서 누구에게나 흡족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대부분의 국민들은 알고 있다.
군인 출신의 이종명 의원(자유한국당, 비례)은 ‘이 시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핵 동결을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핵을 허용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핵 보유를 선언하면 대책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역시 대통령급에서 답변을 내놔야 할 수준의 질문이다.
정경두 후보자는 이 질문에 “궁극적으로는 비핵화가 원칙이고, 핵을 포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원론적 답변을 다시 한 번 불가피하게 내놨다. 이어 정 후보자는 “외교적으로 대화와 압박을 통해 거기(핵 보유 선언)까지 가지 않도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청문회 화면을 가리고 소리만 듣는다면 이 장면은 국방부 장관이나 외교부 장관 인사청문회로 오인될 정도다.
진영 의원(더불어민주당, 서울 용산)은 ‘한반도 비핵화가 궁극적 목적인데 중간 단계에서 핵 동결로 타협하자는 것 아니냐’고 질문했다. 이 질문 역시 합참의장에게 물어야 할 수준의 질문인지 의아해진다.
이 질문에 정경두 후보자는 “궁극적인 목표는 비핵화 달성이 원칙이고 중간단계 핵 동결, 그 다음이 비핵화라는 정부 정책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어느새 정 후보자는 국방부 장관 청문회도 통과할 만한 수준급 적응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청문회가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이런 질문이 난무하는 합참의장 인사청문회가 향후 계속된다면, 앞으로 합참의장 후보자는 본업인 작전권 연구보다는 국제정치학이나 외교학, 대통령학 등을 복수전공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생긴다.
정경두 합참의장 후보자가 18일 오전 국회 국방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선서에 앞서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
이정현 의원(무소속, 전남 순천)은 ‘북한이 핵무기를 가졌는지 파악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 여부는 미국 대통령이나 미 중앙정보국(CIA)에서도 사실을 장담할 수 없는 최고급 정보다. 국내에서도 대통령이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국정원장, 국방부 장관 등이 극비로 다뤄야 할 기밀사항이다.
그런데 전국으로 TV 생중계되는 합참의장 인사청문회에서 이런 질문이 난무했다.
곤란해진 정경두 후보자는 ‘모른다’고 답했다. 다만, 정 후보자는 “정보를 총동원해서 확인하고 있지만 확인된 바는 없는 것으로 안다”며 답변의 예의를 갖췄다.
경대수 의원(자유한국당, 충북 증평진천음성)은 ‘코리아 패싱을 거쳐 중미간 비밀협상으로 평화협정이 이뤄지고 주한미군 철수하면 용납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역시 ‘대통령급’ 질문이다.
정경두 후보자는 “현재 코리아 패싱은 한미관계에 실제 정책적으로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 정책 업무 수행하는 분들 간에는 그런 것이 없고 긴밀하게 공조하고 있다”고 답했다.
정경두 후보자는 마치 대통령급, 국방부 장관급, 외교부 장관급, 국정원장급 질문이 인사청문회에서 쏟아져나올 것임을 예감이라도 한 것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대처했다. 아마도 그의 앞에서 합참의장을 역임한 선배들이 이런 질문을 받고 답변하는 장면에 벌써 익숙해져 있었던 것일까.
그러나 국민들은 현역 군인 중 작전권 최종 결정권자인 합참의장 후보자를 상대로 한 청문회에서 합참의장에 어울리는 질문이 나오기를 고대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합참의장 인사청문회에서 합참의장 후보자의 직무수행 능력이 제대로 검증되기를 바라고 있다. sooh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