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춘추시대와 일본의 막부시대의 공통점이 번병(藩屛)이다. 천자(天子)와 쇼군(將軍)이 전국을 통치하지만 각 지방정치는 제후들에게 맡긴 형태다. 중앙의 힘이나 시스템이 부족하다 보니, 일종의 정치적 지렛대(leverage) 효과를 일으킨 셈이다. 서양에서도 가도(街道) 강력한 중앙집권을 이뤄냈던 로마제국 붕괴 이후 봉건제(Feudalism)가 나타난다. 교통과 경제의 발달로 중앙권력의 힘이 강해지고 폐번치현(廢藩置縣), 이른바 군현제(郡縣制)가 보편화된다.
최근 전세가격 하락 조짐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반길 일이지만, 부동산 시장 전체로 보면 마냥 반길 일만은 아니다. 전세는 주택시장을 읽는 데 꽤 중요한 지표다.
전세는 대한민국의 독특한 제도다. 한국전쟁 이후 주택난을 타개하기 위해 관습상 이루어져 온 채권적 전세제도를 현행민법이 수용한 결과다. 돈이 필요한 집주인은 돈을 얻고, 살 곳이 필요한 세입자는 집을 얻는다. 전세권은 제임대를 줄 수도 있을 정도의 꽤 강력하다. 법의 보호도 촘촘하다. 번병 제도와 꽤 닮았다.
일각에서는 전세제도가 결국에는 사라질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데 전세가 우리 금융시장에 기여하는 부분 역시 적지 않다. 이른바 자산유동화와 차입투자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우선 예대금리차를 감안한다면 집 주인 입장에서는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것보다 전세를 주는 편이 낫다. 또 자산가격 상승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이른바 초과수요, 즉 투기적 수요다. 이용가치로만 접근하는 실수요자만 존재한다면 자산가격 상승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주택시장에서 초과수요를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전세다. 레버리지는 한정된 자본으로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가장 대표적인 수단이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gap) 투자’가 주택가격 상승기에 꼭 나타나는 이유다.
한편 전세와 함께 또다른 첨단(?) 투자기법으로 꼽히는 분양권은 어떨까? 금융으로 따지면 일종의 옵션이다. 시세가 불투명하고, 법적보호도 약해 투자위험이 지나치게 높다. 어찌보면 전세보다 먼저 사라질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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