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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난의 역설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수천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현장으로 밀려든다. 하루 수천 개의 구호물자가 현지에 도착하고, 부탁치도 않은 옷가지와 추운 밤을 보낼 수 있는 이불이 산더미처럼 쌓인다. 위로받아야 할 피해자들은 도리어 이웃을 위로한다. 유족의 아픔은 사회적 증상이 된다. 9ㆍ11 테러를 겪은 미국과 대지진으로 초토화된 멕시코에서 일어난 얘기다. 대재난을 맞은 사회의 반응은 대체로 유사하다. 세월호 침몰 사고를 겪은 한국 상황도 다르지 않다.

‘재난연구’라는 신분야를 개척했던 찰스 프리츠(Charles E. Fritz)가 밝힌 재난에 대한 통찰은 세월호 사고로 ‘집단 트라우마’에 빠진 2014년 봄, 한국 사회를 정면으로 관통한다. 그는 재난이 발생하면 ▷기존 정부가 구축한 시스템의 결함이 나타나고 ▷집권 권력은 권력 정당성을 의심받게 되며 ▷정부와 엘리트 대신 기민하고 효율적인 시민사회가 현장을 접수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재난 상황을 ‘전복적’이라 진단하기도 했다. 주변은 중심이 되고, 중심은 주변이 되는 전복이, 재난을 계기로 형성되고 이에 대해 기존의 권력은 ‘불쾌하다’는 반응을 내놓는다는 설명이다.

예컨데 태풍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즈를 덮쳤을 때 미국 정부는 현장을 찾은 자원봉사자들의 현장 출입을 금했다. 이유는 약탈과 방화 때문에 자원봉사자들의 신변이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재난 당시의 범죄율은 재난 이전보다 늘지 않았다. 정부보다 발빠른 대처를 보인 시민들의 노력이 ‘불쾌한 정부’에 가로막힌 것이다.

안타깝지만 유사 상황은 세월호 사고를 겪은 한국에서도 반복됐다.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 타워는 청와대가 아니다’는 뜬금없는 주장으로 곤욕을 치렀고, 사고 초기 정부는 관련 담당 부처가 해양수산부인지 안전행정부인지 몰라 허둥댔다.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은 ‘사고 현장에 자원봉사자가 너무 많다’고 했고, 한선교 의원은 재난 발생시 허위 사실로 정부 대응을 비판하는 사람을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해 ‘불쾌감’을 드러냈다.

프리츠의 ‘전복적’이란 주장은 ‘재난의 역설’로 이어진다. 그는 재난을 통해 잊혀졌던 사회 공동체 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재난은 개인주의로 없어져 버린 현대사회에 공동체적 일체감을 회복 시켜주는 계기가 된다”고 했다. 이를 한국 사회에 적용하면 경쟁을 숙명으로 생각하고, 한 사람의 가치는 그의 ‘현금창출력’으로 여기며, 세계 최고의 자살률에도 불구하고 앞만보고 달리던 한국인들을 세월호가 멈춰 세웠다는 의미가 된다.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의 핵심엔 세월호가 자리했다.

전국에 나부끼는 노란 리본이, 170만 명을 헤아리는 분향소를 찾은 애도의 물결이, 셋만 모이면 사고와 관련해 탄식과 원망과 분노를 쏟아내는 것은 사고를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아픔을 내 것으로 여기는 능력이 공감이고, ‘너와 나’가 하나임을 전제해야 성립하는 것이 공동체라고 한다면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나타난 ‘한국적 증상’은 공동체 정신의 회복이라 설명할 수 있을 법하다.

‘힐링 열풍’이 뜨겁다. 이는 ‘대한민국이 아프다’는 가정에 대한 공감폭이 크기 때문이다. 가끔은 주변의 친구가, 때로는 부모님이, 형제가 해줬던 역할을 이제는 사회가 담당할 때가 된 것이다. 이념도, 지역도, 세대도 무력화시킬만큼 세월호 사고의 아픔은 한국 사회를 관통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한국 사회가 여전히 스스로의 아픔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음을 확인하는 계기로 해석할 수 있다. 아픔에 대한 직시가 힐링의 첫 걸음이라면, 지난 4주간 보인 여러 면면들은 ‘한국의 가능성’을 확인한 계기였다.

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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