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77’
‘놀고 먹던’ 국회가 지난 두 차례(19일·26일) 본회의에서 무려 154개의 법안을 ‘우르르’ 통과시켰다. ‘법안 처리 0건’ 국회라는 언론들의 비난 포화가 쏟아진 직후여서 154라는 숫자는 꽤 커보였다. 그러나 꼼꼼히 살펴본 결과, 처리 법안 다수는 기존 법률 용어를 알기 쉽게 바꾸는, 이른바 ‘알법’들이다.
법제처는 지난 2006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알기 쉬운 법령만들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법령을 쉬운 우리말로 바꾸자는 취지다. 하지만 국회 의원회관에서 ‘알법’은 ‘만들기 쉽고 생색내기 좋은 법안’으로 오용되고 있다.
지난 26일 본회의에서 통과된 법안 가운데 ‘금치산자 또는 한정치산자’를 ‘피성년후견인’으로 교체하는 법안들이 19건(전체 77건)이다. ‘피성년후견인’은 올해 7월부터 시행된 민법 수정사항에 따라 부정적 의미가 강하게 밴 금치산자 또는 한정치산자를 대체하는 단어다.
‘법정형 정비(형량 강화)’도 손쉬운 ‘알법’으로 분류된다. 지난 19일 통과된 법안 중 ‘감사원법 일부 개정법률안’은 벌금형을 500만원 이하에서 1000만원 이하로 높이는 것이다.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 역시 벌금형 강화(300만원→1000만원)가 전부다.
모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알법엔 반대가 없어 만들기 쉽다”면서 “의원에 대한 평가가 ‘법안 발의 건수’ ‘본회의 통과 건수’로 이뤄지면서 ‘알법’에 욕심 내는 방들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 A, B, C, D 네 명의 의원이 똑같은 법정형 정비(300만원→1000만원) 법안을 냈을 경우 ‘대안’으로 묶여 법안이 통과되면 네 의원 모두에게 ‘법안통과 건수’가 1개씩 더해진다. 법안은 하나가 수정됐지만, ‘통과시킨’ 의원 수는 4명이 되는 셈이다.
보좌관만 14년째인 한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해 국회에서 주는 우수의원상은 ‘알법’만 팠던 의원이 받았다”며 “정량평가의 폐해”라고 꼬집었다. 이쯤되면 ‘알법’의 꼼수를 국민들도 다 알 법하니, 이젠 그만둘 때가 아닐까.
홍석희 기자/ 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