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재보선 한달 앞으로…새누리당 대선공약 따라 공천폐지 가닥·민주당은 현행유지 입장…기로에 선 지방의회 22년 역사
광역의원은 3억원·7당6락…지역 명망가는 공천서 탈락하고
중앙당 인맥만 지방의회 진출
재정자립도 바닥인데 과도한 특권
하남시 24일 덕풍동 가스폭발 사고때
시의원 전원 외유 등 모럴해저드도
박근혜“ 기초단체장·기초의원 정당공천 폐지”(박근혜 공약집). 문재인“ 지방의회·기초단체장의 정당공천제를 폐지하겠다”(2012년 11월 27일 부산 사상 터미널). 안철수“ 시ㆍ군ㆍ구 의회의 정당 공천을 폐지해야 한다”(2012년 10월 8일 대구대 특강). 지난 대선 당시 유력 대선후보 진영은 이구동성으로‘ 지방의회 공천폐지’공약을 내걸었다‘. 정치쇄신’과‘ 특권 내려놓기’를 앞세운 새 정치인‘ 안철수’가 여야를 동시에 비판하면서 등장하자, 기존 거대 두 정당은‘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저것’이라며 앞다퉈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의 쇄신안을 수용했다. 그리고 대선은 끝나고 시간이 흘렀다. 누가 18대 대통령이 되더라도 곧바로 실천될 것 같았던‘ 지방의회 공천폐지’는 각 정당이 처한 입장에 따라, 공약의 우선순위에 따라 여전히‘ 실천’이 아닌‘ 논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약속의 정치인’ 박근혜 대통령을 배출한 새누리당은 가장 앞서 정당 공천 폐지 기류를 형성했지만“ 우리만 하면 손해”라는 최고위원회의 반발에 가로 막혀 있고, 민주통합당 정치혁신위는‘ 현실론’을 내세우며 정당 공천권 행사를‘ 현행 법대로’하겠다는 입장이다.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던진‘ 돌멩이(정치쇄신)’ 하나가 여야 정치권에 커다란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에 대해 중앙정치권의 정당공천체 폐지 논의와 맞물려 지방의회 본연의 문제점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된 지 올해로 22년이 지났지만 한국의 지방정치는 ‘밑바닥 민생 챙기기’는 뒷전으로 미룬 채 지역비리와 정쟁으로 얼룩져 왔다는 지적이다.
가장 많이 지적된 부분은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점이다. 막상 선거에서도 지역의 일꾼을 뽑는 일보다 ‘정권 심판론’ ‘야당 응징론’ 등이 더 힘을 받는다. 지방의원들이 공천권을 행사하는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뒷바라지에 더 치중하게 되는 것이다. 지방의회에 출마했던 한 인사는 “중앙당보다 더 일방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지구당의 현실이다. 공천제를 폐지하면 당협위원장의 ‘지구당 사당화’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역주의 장벽도 견고하다. 영호남에서는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면 의회 진출 자체가 어렵다. 또한 자치단체장과 같은 당 소속의 지방의원들이 서로 ‘다수당 카르텔’을 형성하면서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칙도 희석되기 쉽다.
공천권 때문에 빚어진 폐해도 적지 않다. 지난 2010년 6·2지방선거에선 돈 공천 풍문이 난무했다. ‘7당(當)6락(落)’(7억원 내면 공천받고, 6억원 내면 못 받는다)이고, ‘광역의원 공천은 3억원’이란 말이 공공연했다. 실제로 2010년 4월 9일 전남 해남군수(민주당)와 4월 16일 여주군수(한나라당)가 공천과정에서 구속됐다. 이 같은 구조적 모순은 민선 4기(2006년) 기초자치단체장 230명 가운데 113명(49.1%)이 기소되고 45명(19.6%)이 직에서 물러나는 결과로까지 이어졌다.
결국 피해는 지역주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지역 현안을 훤히 꿰뚫고 있는 지역 명망가는 공천을 받지 못해 떨어지고, 중앙당과 긴밀한 연줄을 가지고 있는 인사들은 지방의회에 진출하는 기현상이 속출한다.
지자체단체장과 지방의회의 다수당이 달라질 경우엔 더 문제가 커진다. 대표적인 지역이 경기 성남시. 민주당 소속 이재명 시장과 의회를 장악한 새누리당이 지역 주민을 볼모 삼아 사사건건 충돌하고 있다. 작년 말에는 극한 대립으로 예산안을 제때 처리하지 못해 지자체 사상 처음으로 준예산 편성 사태를 빚었다. 지금은 법정 다툼으로 날이 새고 있다. 중앙당의 ‘정치싸움’이 지자체로 옮겨 붙으며 ‘당쟁 성격’을 띠는 것이다.
재정자립도는 바닥인데 지방의원들의 과도한 특권도 논란거리다. 당초 지방의원은 무보수 명예직으로 의정 활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경비만 지급받았다. 하지만 2006년부터 유급제가 도입되고 기존의 지방자치단체 조례에 대한 제ㆍ개정 권한과 행정사무 감사, 예산심의 의결권 등이 유지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모럴해저드’와 자질 문제는 입이 아플 정도로 심각하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제5기(2006년 7월∼2010년 6월) 지방의원 3626명 중 8.9%인 323명이 임기 중 사법처리됐다. 경기 하남시의회의 경우 지난 24일 덕풍동 가스폭발 소식을 듣고도 시의원 7명 전원이 외유를 강행한 소식이 알려지면서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기고문에서 “우리나라에서 정당공천 폐지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지방선거에서 다양한 정치세력이 자유경쟁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계에선 ‘지방의회 정당공천’의 문제점으로 ▷지방정치의 중앙 예속화 ▷시민 선택권 제한 ▷견제와 균형 붕괴(단체장 대 지방의회) ▷지구당의 사당화 등이 문제점이라는 판단을 내놓고 있다.
이상묵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정당공천제 실시는 정당정치의 발전을 꾀한다는 대의명분에도 불구하고 실제 지방선거에서는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홍석희·양대근 기자/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