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인도 없는 투표함
선거인원-명부 불일치
온라인투표 미리 훔쳐보기…
“이기면 끝”소아적 발상…“우리는 깨끗”오만함 얽혀
부정선거 결정판 오명남겨
‘투표함 바꿔치기ㆍ대리투표ㆍ이중투표ㆍ투표함 훔쳐보기….’
도덕성을 전가의 보도로 삼아 기성정치를 싸잡아 비판해왔던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경선 비리 유형을 살펴보면 과거 독재시절 때 저질러졌던 불법ㆍ부정선거의 판박이다. 투표함이 개봉된 채 운반됐고, 선거인원 수와 명부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다수 발견됐다. 투표함 훔쳐보기와 내키면 투표함까지 몽땅 바꿔 치울 기세로 투표가 진행됐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이기면 그만’이라는 사고와 ‘우리는 깨끗하다’는 오만이 어우러져 한편의 커다란 ‘비리 대하소설’을 방불케 했다.
2일 통진당의 자체조사에 따르면 우선 개표소에 도착한 투표함에 봉인이 없었던 사례는 과거 이승만 정권 시절 트럭 위에서 투표함 수십개씩을 통째로 바꿔치기 하거나 봉인된 투표함을 뜯어 몰표를 밀어넣는 방식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진보당의 투표함에선 투표용지 수와 선거인명수 인원 수가 일치하지 않는 사례가 다수 발견됐다. 대리투표와 강제투표, 겁박투표가 횡행하던 독재시절에나 있을 법한 선거 부정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재연된 것이다.
이 때문에 진보당 선거관리위원회는 모두 7곳 투표소의 투표함을 무효화했다. 이로 인한 당내 잡음도 여전하다. 투표함이 무효화되면서 비례대표 순서가 바뀌게 된 것이다. 1번 윤금순 후보와 9번 오옥만 후보의 순서가 바뀌게 된 것 역시 투표함 무효 처리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진보당 내엔 존재한다.
선거 결과 발표가 별다른 이유 없이 늦춰진 것도 여전히 의혹거리다. 진보당 당규에는 각종 선거결과에 대해선 즉시 발표가 원칙이다. 그러나 이번 비례대표 경선 결과는 경선이 끝난 뒤 사흘 후에야 발표됐다. 가뜩이나 허술하게 관리된 현장 투표인데다 그 결과까지 늦게 발표되자 비례 후순위를 받은 후보자들은 ‘모종의 공작’이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소스코드 개봉’은 ‘투표함 훔쳐보기’에 해당된다. 진보당 청년비례대표 투표가 진행되던 지난 3월 11일 새벽 온라인 투표 결과를 집계하는 프로그램의 소스코드가 임의로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열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투표가 진행되는 도중 투표함이 개봉된 것에 비유될 만큼 중대한 사안에 해당한다. 만일 소스코드가 변경됐다면 선거 결과는 완전히 뒤바뀔 수 있다. 진보당 측은 결과를 왜곡하지는 않았다고 잠정 결론 내린 것으로 알려졌지만 진보당의 ‘투표함 훔쳐보기’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어서 의혹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고 있다.
이정희 진보당 대표가 물러나게 된 것 역시 연원을 거슬러 따지면 ‘투표함 훔쳐보기’였다. 이 대표의 보좌진은 김희철 민주당 후보와의 관악을 지역 후보 단일화 경선과정에서 ‘60대로 응답하고 설문에 응하라’는 내용의 문자를 발송했다. 이는 결국 조사 결과를 실시간으로 보고받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으로 이어졌고,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 대표는 후보직을 사퇴해야만 했다.
황당 투표 사례도 다수 나왔다. 투표 관리자의 직인이나 사인이 없는 투표용지가 투표함에서 나온 것. 이는 곧 투표함 봉인이 없었던 사례와 묶여지며 진보당의 비례대표 선거과정에서 대단위 선거 부정이 저질러졌을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밖에 참관인 확인란에 참관인의 서명이 빠졌던 사례도 발견됐다. 현장 투표 관리가 얼마나 허술하게 이뤄졌는지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참여당 출신 한 인사는 “과거 운동권시절 특정 후보 지지를 위해 학생들 수천명이 특정 지역구로 주소지를 옮겨 선거를 치르는 식의 투표 행위가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며 “‘이기면 된다’는 소아적 발상이 여전히 진보당 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홍석희 기자 @zizek88>
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