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대전 모고교 왕따사건 들여다보니…
“외부에 알려지면 큰일”교장·교사 조직적 은폐
“고자질 했다”집단 따돌림
제3의 피해자 만들어
최근 학교폭력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학생뿐 아니라 교사와 교장 등 ‘학교 자체’가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사례가 속속 확인되고 있다. 이에 대해 교육계 등에서는 교사나 교장이 조직적으로 학교폭력 사건을 은폐ㆍ축소하려는 시도를 막기 위한 법령이나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달 잇따라 발생해 충격을 줬던 대구와 광주의 중학생 자살 사건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이들 중학생의 소속 학교가 사건을 은폐하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대구 D중의 경우 지난해 7월에도 친한 친구가 ‘왕따(집단따돌림)’를 당한다는 사실을 담임교사에게 알린 여학생이 다른 학생으로부터 ‘고자질’했다는 비아냥거림을 견디다 못해 자살했다. 하지만 D중과 교육당국은 가해학생에 대한 별다른 조치 없이 사실을 숨기는 데만 급급하다 다섯 달 만에 또다른 ‘희생’을 불러왔다.
광주 J중의 경우 학생의 자살 뒤에도 해당 학생이 학교폭력과 관련돼 숨졌다는 사실, 사망 당일 담임교사가 해당 학생을 교무실 바닥에 무릎 꿇게 하는 등 훈육지도한 사실, 언론 보도 등으로 사회적 이목이 집중될 것에 대한 부담감 등으로 학교 측이 학교운영위원회를 개최하지 않고 조기방학을 실시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14년 전 ‘대전 D고 왕따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1998년 8월 당시 이 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A(18) 군이 교사 2명과 학생 63명에게 ‘조직적인 왕따’를 당했다고 A군의 아버지(53)가 폭로하면서 불거졌다.
당시 교육부가 작성한 사건 개요에 따르면 해당 학교의 교장과 교사는 사건 은폐를 위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 일부 교사는 A군의 일기장 등 개인정보를 의도적으로 외부에 유출해 피해자 측의 주장에 대한 반박자료로 활용하기까지 했다.
이는 같은 해 9월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지자 교장과 교감, A군의 담임교사와 학생부장 교사 등이 회의를 갖고 A군의 개인정보(피해사례가 기록된 일기장, 중학교 시절의 개인생활지도누가기록카드, 교사-학생 결연지도카드, 부적응학생지도카드)를 유출하기로 결정한 데 따른 것이었다.
이들 교사는 가해학생 학부모들에게 모임을 조직하도록 유도하고, 유출한 A군의 개인정보를 ‘가해학생 학부모 모임’ 대표에게 전달했다. 또 유출한 정보를 자료로 만들어 시민단체와 언론 등에 배포하고, 각 반의 학생 대표로부터 “가혹행위가 없었다”는 서명까지 받았다.
신상윤 기자/ke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