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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家, 시누이-올케 지극한 '미술사랑'
시누이와 올케가 ‘미술 대전(大戰)’을 벌이고 있다. 시누이는 신세계 이명희(68) 회장이고, 올케는 삼성미술관 리움 홍라희(66) 관장이다.

신세계와 삼성의 미술품 컬렉션을 진두지휘하는 사령탑인 두 사람은 최근 들어 더욱 팽팽한 접전을 벌이고 있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계적으로 가장 작품값이 비싼 현존 작가’의 수십, 수백억대 작품을 사들이는가 하면, 메가톤급 전시도 경쟁적으로 펼치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두 ‘미술계 거물’이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작품이 공교롭게도 상당부분 겹친다는 점이다. 우선 ‘살아 있는 피카소’로 불리는 제프 쿤스(56)가 그렇고, ‘초대형 거미 조각’으로 유명한 루이스 부르주아(작고)가 그렇다. 이들 미국 작가의 작품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시누이’ 이명희 회장은 29일 초콜릿캔디를 연상케 하는 300억원대 제프 쿤스의 고광택 조각 ‘Sacred Heart’를 신세계 본점 조각공원에 설치했다. 높이 3.7m의 이 조각은 쿤스의 대표작 중 하나로, “신세계 옥상에 300억짜리 유명조각이 설치됐다는데 한번 가보자”며 벌써부터 입소문이 자자하다.


그러나 사실 쿤스의 조각을 먼저 사들인 사람은 ‘올케’인 홍 관장이다. 홍 관장은 지난 2009년 쿤스의 ‘리본 묶은 매끄러운 달걀’을 리움 초입에 설치하며 국내에 ‘쿤스 열풍’을 주도했다. 이 회장 또한 쿤스 조각을 4년 전 소개받았으나 2, 3년 전까지도 고개를 흔들다 작년에야 최종 결심(?)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리움의 작품 설치가 하나의 자극이 되었을 것이란 분석이다. 현재 쿤스의 조각은 CJ, 하이트진로도 보유 중이다.

이명희-홍라희 두 큰손은 ‘페미니즘 미술의 기수’인 부르주아의 ‘거미’ 조각도 나란히 구입했다. ‘거미’를 이 회장이 먼저 구입한 것이 다를 뿐이다. 이 밖에도 알렉산더 칼더, 헨리 무어, 엘즈워스 켈리 등 ‘겹치는 컬렉션’이 많아 “범 삼성가 출신이라 그런가. 어쩌면 그리 취향이 비슷하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또 “쌍방간 은근히 신경전을 펼치는 모양”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두 ‘큰손’과 모두 거래해온 한 화랑 관계자는 “꼭 시누이, 올케 사이라서가 아니라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지 않겠느냐. 그들의 결정이 우리 미술계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크니 말이다. 물론 서로를 의식하는 것도 사실이다. 해외서 이슈가 되고 있는 작품을 소개하면 ‘어디 다른 데서 안 샀느냐’고 묻는 게 그 방증”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선의의 경쟁자가 있기 때문에 자극이 되고, 그만큼 더 좋은 작품을 확보하기 위해 힘을 쏟게 되는 등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고 덧붙였다.

두 살 터울의 이 ‘막강(?) 시누이, 올케’는 똑같이 미술을 전공했다. 이 회장은 이화여대 생활미술과를, 홍 관장은 서울대 응용미술과를 졸업했다. 두 사람은 이병철 선대회장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미술 수업을 받았고, 이후 미술에 심취해 나름대로 감식안을 키워온 것도 똑같다. 딸들(정유경 신세계 부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또한 미술 유학을 보내 자신들의 뒤를 이을 ‘미술계 큰손’으로 키우는 것도 똑같다.

두 사람 공히 김환기, 이우환 등 국내 작가도 좋아하지만 최근엔 해외 미술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있다. 그 중에서도 세계적으로 지명도가 있는 슈퍼스타급 작가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작품의 완성도와 미술사적으로 미래가 보장되는 작가가 많지 않아 컬렉션이 겹치는 것.

신세계 관계자는 “300억에 이르는 외국 작품을 구입하자 ‘우리 작가도 많은데 왜 그리 비싼 외국 작품을 사느냐’는 지적이 있으나 공공장소에 세계적인 스타작가의 작품을 설치함으로써 고객들에게 문화적 만족감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 같은 겹치기 컬렉션에 대해 비판 또한 없지 않다. 정준모 국민대 초빙교수는 “인기 작가를 좇다 보니 미술관과 기업의 컬렉션이 성격이 없어지고 있다. 보다 선명한 목표점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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