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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후의 결사대’ 운명의 시간 다가온다
아버지는 평소처럼 출근하듯 집을 나섰다. 늘 그렇듯 무뚝뚝한 얼굴에 별다른 말도 없었다. 이 길이 영영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길이라는 것을 아버지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듯 했다. “사명감을 가지고 다녀오겠다” 아버지의 말은 짧았다.

일본 지지통신이 전한 후쿠시마 원전 ‘최후의 결사대’ 가운데 한 명의 이야기다. 18세부터 40여년간 지역 전력회사에서 일한 이 남성은 정년을 불과 6개월 남기고 후쿠시마 원전에 자원했다.

이처럼 원전 자원자들의 귀엔 ‘자살행위’라는 외국 원전 전문가의 말보다 국가적 위기에 처한 일본 국민의 간절한 소망만이 들릴 뿐이다.

지난 11일 발생한 지진과 쓰나미로 전력 공급이 끊기면서 제1원전 1~4호기는 차례로 폭발했고 불이 났다. 한시바삐 냉각시키지 않으면 노심용융이 일어나 방사능 물질이 유출되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800여명의 도쿄전력 직원이 손을 써봤지만 12일 1호기에서 폭발이 일어났고 노출 방사선량은 400mSv로 높아졌다. 살아남으려면 피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이지만 50명은 끝까지 남았다. 납으로 두른 방호복에 헬멧을 쓰고 산소마스크로 완전무장을 했다. 그러나 원자로 앞에선 이들의 안전을 지켜주기엔 충분치 않았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일본 보건후생성은 원전 기술자의 피폭방사선량 법정 한도를 100mSv에서 250mSv로 높였다. 이에 따라 최후의 결사대는 181명으로 늘었다. 뉴욕타임스는 “이들은 자원하거나 임무를 부여받은 자”라며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깜깜한 원전 내부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하늘에서도 원전을 지키려는 노력이 계속됐다. 17일 오전 항공자위대원 19명은 헬기 4대에 나눠타고 1원전 상공을 누볐다. 냉각수를 투입해 원자로 온도를 낮추는 게 그들의 임무였다. 뿜어져 나오는 방사선을 막아주는 건 헬기 바닥에 깐 텅스텐 시트뿐이었다. 이들은 원전 종사자들의 연간 피폭 한도(50mSv)보다 많은 방사선량(시간당 87.7mSv이 쏟아져 나오는 원전 상공에서 필사적으로 물을 뿌렸다.

또한 이날 원전 1호기 밖에는 경찰의 고압방수차가 동원돼 냉각 작업에 나섰다. 경찰 20여명은 방사선 피폭 위험 속에서 혼신의 힘을 다했다. 원전 주변에는 자위대원 200명이 방사능 물질 제거 시설을 설치하고 사람과 옷에 묻은 방사능 물질을 씻어내거나 측정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현재까지 이들의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 지난 16일 프랑스 ‘방사능 방어 및 핵안전 연구소’(IRSN)는 “앞으로 48시간이 고비”라고 말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17일 “대단히 심각한 상황”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일단 도쿄전력은 17일 “원전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도록 전선을 연결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르면 18일 부분적으로 냉각수 공급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1억2000만 일본인의 운명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최후의 결사대 400여명의 손에 그 운명이 달렸다.

<김우영 기자@kwy21>
kw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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