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임권택(77)의 삶은 고스란히 ‘현대사의 증언’이었다. 피난지 부산에서 군화 장사를 하던 청년 임권택이 먹고 살기 위해 영화로 전업한 1955년 이후 그가 걸어온 길은 오롯히 ‘한국영화사’가 됐다. 그 길에서 임권택은 수많은 인연들을 만났다.
스승(정창화 감독)과 평생의 반려자(채령)을 얻었으며, 숱한 영화적 동지들을 마주쳤다. 임권택의 길에서 그들이 들고 났던 궤적은 마땅히 한국영화사의 일부가 됐다. 그 ‘운명적 만남’ 중의 하나가 영화배우 강수연(45)이다. 서구인들에겐 과연 한국이란 나라에서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을 때인 1987년, 제 44회 베니스영화제는, 강수연의 말을 빌자면 “남한인지 북한인지도 헷갈려하는” 아시아의 작은 반도 반쪽땅에서 온 갓 스무살의 여배우를 연기상 수상자로 호명했다.
세계무대에서 한국영화의 웅비는 그렇게 시작됐다. 1989년엔 임권택과 강수연의 두번째 만남 ‘아제 아제 바라아제’가 당시 세계 4대 영화제로 꼽히던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 다시 한번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강수연은 ‘월드스타’라는 호칭을 선사받았고, 임권택은 해외무대에서 한국영화를 상징하는 얼굴이 됐다.
17일 임권택과 강수연의 동행 수원 한옥마을.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
봄을 시샘한 겨울의 마지막 눈이 전주의 한옥 지붕을 살포시 덮은 지난달 17일, 임권택 감독과 강수연이 서울을 떠나 한지의 고장으로 가는 3시간여의 길을 동행했다. ‘달빛길어올리기’는 우리 전통의 종이인 한지의 아름다움을 담은 영화이고, 주 촬영지가 전주의 한옥마을이었다. 강수연이 특유의 장난기를 보이면 눈을 살짝 흘기는 임권택 감독은 응석받이 막내딸을 보는 아버지였고, “둘이 마신 술을 치자면 양조장을 하나 차릴 것”이라고 할 때 70대의 감독과 40대 배우는 오랜 길을 함께 해온 동지였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사진=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