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찬경 형제가 공동연출한 30분짜리 단편영화 ‘파란만장’이 지난 20일 폐막한 제 6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단편 부문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는 통신사 KT가 의뢰해 두 감독이 스마트폰인 아이폰 내장 카메라로 찍은 영화다. 국제영화제에서 스마트폰으로 찍은 영화가 수상한 것은 최초의 일이다.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로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으며 한국영화계의 최고 감독이자 세계적인 스타 감독으로 떠오른 시네아스트다. ‘박쥐’로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로 베를린영화제 알프레드 바우어상 등 수상행진을 계속하다 이번에는 단편영화로 트로피를 하나 더 추가했다. 반면 박찬경은 한국영화에선 ‘신인’이고 아직은 미술작가로서 더 익숙한 이름이다. 박찬경은 서울대 서양화과와 캘리포니아 예술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뒤, 사진과 영상을 이용한 설치미술작가로 활동해왔다. ‘미디어 아티스트’가 대표명함이다.
두 형제는 아주대 공대 학장이었던 건축학자 아버지를 둔 것 외에도 본격적인 영화감독, 미술작가의 길을 가기 전 각자의 영역에서 ‘글발’ 좋은 평론가로서 유명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박찬경은 그 동안 작품을 통해 우리 사회의 근대화 이면의 풍경을 ‘콜라주’(이미지의 조각을 이어붙이는 미술작업)해왔다. 사실 영화감독이나 영화제의 데뷔는 베를린이 아니다. 최근 열린 로테르담영화제에선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초청받았다. 이 작품은 많은 여직공이 희생당한 공장화재사건부터 문화재 발굴 현장까지 한 도시의 성장과정을 통해 현대화의 의미를 추적한 작품이다. 이전에 발표했던 ‘신도안’이라는 작품에선 충남 계룡산에 터를 잡은 다양한 민속종교들을 조명했다.
결혼 전까지 한방에서 뒹굴렀다던 형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형제 중 형은 영화를 통해서 ‘죄와 구원’을 물었고, 동생은 근대화의 삶 속에서의 ‘무속신앙’을 자주 소재로 택했다. 오광록과 이정현을 기용한 ‘파란만장’은 중년남자와 무녀의 이상한 만남을 통해 굿으로 상징되는 무속제의에서의 생과 사의 의미를 보여준다.
세계 영화사엔 워쇼스키 형제(‘매트릭스’), 코언 형제(‘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등 피와 끼를 나눈 유명감독들이 있다. 박찬욱-찬경 형제가 한국을 대표하는 ‘시네마 브라더스’가 될 수 있을까. 차기작 준비로 베를린 시상식에 불참한 박찬욱 감독은 할리우드 진출작 ‘스토커’의 크랭크인을 앞두고 있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