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스 곤살레스의 저서 ‘생존’은 다양한 재앙과 조난 사고의 사례를 분석해 희생자와 생존자의 차이를 보여주고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는 법칙’을 끌어낸 책이다. 이에 따르면 단순히 길을 잃은 경우를 비롯해 비행기 추락이나 해양, 산악 조난 사고를 당한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자신이 있는 곳은 물론 목적지에 대한 좌표를 잃었으며 고립돼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단계에서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우울과 짜증, 분노, 무기력을 거쳐 최후에 이르게 된다. 이성은 마비되고, 자신이 가진 최소한의 생존 조건마저 완전히 망각하며 미친 듯이 미로를 뱅뱅 돌다 비극을 맞는다.
반면 생존자들은 죽음이 머지않고 구조대가 올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자신이 가진 모든 조건을 활용해 삶을 연장시킨다. 이들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절망과 고통에 익숙해지고, 과거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최악의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니 보일 감독의 영화 ‘127시간’은 조난 실화를 그린 작품이다. 실존 주인공인 애런 랄스턴은 지난 2003년 5월 유타주 몹 근교의 블루존 계곡을 오르다 바위에 굴러떨어져 팔이 끼이는 사고를 당한다. 그는 완전히 고립되고 몸을 옴짝달싹할 수 없으며 물과 식량이 다 떨어지고 기력이 소진된 상황에서 닷새간을 버티다 결국 바위에 낀 자신의 오른 팔뚝을 날이 무딘 산악용 나이프로 절단한 뒤 살아났다.
‘트레인 스포팅’ ‘슬럼독 밀리어네어’ 등에서 화려하고 감각적인 영상으로 영국과 인도의 현실을 재해석한 대니 보일 감독은 이 처절한 사투마저 뮤직비디오 같은 영상으로 영화적 재미를 극대화한다. 대부분의 러닝타임을 채운 계곡의 ‘1인극’을 매우 극적으로 만들어낸 것 또한 기막히다. 애런 랄스턴 역의 제임스 프랑코는 뛰어난 표정과 연기로 감독의 주문에 화답했다. 올해 아카데미영화상 남우주연상 후보다.
무엇보다 영화 속 애런 랄스턴은 ‘생존의 기술’의 교과서다. 팔이 바위에 끼인 바로 다음 그가 한 일은 자기가 가진 모든 소지품을 바위 위에 올려놓고 용도를 생각해보는 것이었다. 그는 내내 캠코더의 전원을 켜놓고 끊임없이 대화하며 자신과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객관화’했다. 구조대를 막연히 기다릴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선 결국 팔을 절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명한 사실도 받아들였다. 부모를 생각했고, 떠난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곱씹었으며, 죽음을 앞에 두고도 ‘TV 토크쇼’를 흉내 내며 유머를 잃지 않았다. 15세 이상 관람가. 10일 개봉.
이형석 기자/ su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