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는 못 보내”라는 절규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해야 할 것을 다하지 못한 죄책감과 나 혼자 남겨질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흘리는 눈물은 이기심이 아닐까. 영화 ‘심장이 뛴다’엔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이 없다. 그저 일어날 수 있는 일, 볼 수 있을 법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하고 빼앗으려 한다. 불법과 폭력은 있지만 선악의 구분은 명확지 않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무엇도 쉽게 비난할 수 없고 누구도 감히 미워하지 못한다. 영화는 묻는다. 이런 상황, 당신이라면.
영화 ‘심장이 뛴다’는 ‘순정만화’ ‘꽃 피는 봄이 오면’ 각본을 쓴 윤재근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아직 생소한 감독의 이름에도 ‘노래 잘하는 가수’가 새삼스럽고 ‘연기 잘하는 배우’가 귀한 요즘, ‘심장이 뛴다’의 박해일과 김윤진은 그 이름만으로도 믿음이 간다. 한겨울 개봉이지만 스크린 속은 한여름. 후텁지근한 날씨는 배우들의 땀과 함께 흐르는 눈물을 생생히 그린다.
휘도(박해일)는 불법 택시 운전사다. 거칠고 단순하게 뒷골목 인생을 살아가는 그는 아픔을 지녔다. 술주정꾼 아빠 때문에 엄마는 집을 나가고 외롭게 컸다. 휘도는 재혼해 행복하게 사는 엄마를 증오하며 오로지 돈이 필요할 때만 엄마를 찾는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쓰러져 뇌사상태에 빠졌다. 돈을 얼마든 주고라도 엄마의 심장을 원한다는 여자가 나타났다. 하지만 휘도는 엄마를 놓지 못한다.
남편과 사별하고 딸 예은이만 바라보며 사는 연희(김윤진)는 영어유치원 원장이다. 하지만 예은이는 심장이식을 받아야 하는 환자. 하루 하루가 고비인 예은이를 보는 연희의 가슴은 타들어간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조건이 맞는’ 한 사람의 심장. 연희에겐 불법이든 살인이든 그 심장밖에 보이지 않는다. 연희는 딸을 포기하지 않는다.
“숨이 막힐 듯한 더위가 가장 힘들었다”고 배우들은 입을 모으지만 휘도와 연희의 주변 인물들은 서늘함으로 다가온다.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이들이 가진 악한 면모를 발견할 때의 섬뜩함이다.
연희가 연락하는 불법 장기 거래 브로커(김상호)가 대표적이다. 사람의 목숨을 돈으로 거래하는 끔찍한 일을 하면서도 딸과 다정하게 통화를 하는 단란한 가정의 아버지 모습을 보여준다.
휘도 엄마의 재혼한 남편(주진모)으로 알고 있었던 아저씨는 휘도가 엄마의 심장을 사수하는 과정에서 감춰진 모습들을 하나, 둘 드러낸다. 힘으로 군림하고 더 큰 힘에 굴복하는 두 얼굴의 인간이었던 것.
이런 배우들의 연기를 보다 생생하게 살리기 위해 ‘심장이 뛴다’는 100% 핸드 헬드 기법으로 촬영됐다. 핸드 헬드는 액션 같은 화면의 역동성을 표현하기 위해 주로 사용된다. 하지만 윤재근 감독은 역동적인 화면보다는 등장인물의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 핸드 헬드 기법을 활용했다. 절박한 휘도와 연희의 불안한 심리도 흔들리는 화면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진다.
하지만 조금 더 압축적이어도 좋았을 연출과, 긴장감ㆍ공감도를 높여가다가 바람이 빠져버리는 결말은 아쉽다.
심장을 지키고 심장을 빼앗는 긴박한 싸움. 그것은 딸을 위한 것인가, 어머니를 위한 것인가. 그 답은 휘도에게 납치당한 예은이가 엄마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려준 초성 문자의 간판 제목 속에 숨어 있다. ‘ㅇㄱㅈㅇㅈㅈ’. ‘압구정역지점’은 절대 아니다. 15세 관람가.
윤정현 기자/ hit@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