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앵발리드 경기장에서 열린 2024파리올림픽 양궁 여자 리커브 단체 결승 한국과 중국의 경기. 임시현, 전훈영, 남수현이 금메달을 확정지은 뒤 기뻐하고 있다. 2024.7.28. 파리=이상섭 기자

[헤럴드경제=박준규 기자, 차민주·정호원 수습기자] 대한민국 양궁 여자 대표팀 마지막 주자 임시현이 주로에 섰다. 신중한 조준 끝에, 당겼던 활시위를 놓는 순간 파리 앵발리드의 관중과 화면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국민들이 모두 숨을 죽였다. 70m를 날아간 화살은 10점 과녁에 꽂혔다. 중국 마지막 주자의 화살은 9점. 심판 판정 끝에, 한국의 여자 양궁 단체전 10번째 금메달이 확정됐다.

임시현의 고교 시절 내내 동고동락한 민수정 서울체육고 코치는 감격한 채 메시지를 보냈다. 제자는 3시간 뒤 현지에서 답장을 보냈다. “선생님, 저희 역사를 썼어요!”

임시현(21), 남수현(19), 전훈영(30)으로 팀을 이룬 양궁 여자 대표팀이 말 그대로 역사를 썼다. 29일(한국시간) 파리 앵발리드에서 열린 여자 양궁 단체전 결승에서 중국과 맞붙어 접전 끝에 5대 4로 승리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10번 내리 금메달을 치지했다. 128년 근대 올림픽 역사에서 두 번째 10연패 위업이다.

▶‘변화무쌍’ 바람을 이기다 = 일찌감치 이번 파리 올림픽 양궁에서 바람은 핵심적인 변수였다. 파리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갑자기 돌풍으로 돌변하면서 선수들은 경기를 치르면서도 끊임없이 바람의 방향과 세기, 질(質)을 고민해야 했다.

양궁 경기가 펼쳐지는 앵발리드 경기장은 센강과 인접한 데다가 사면이 뚫린 평지라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예측하기 어렵고, 바람의 무게도 더 무겁다. 예선전부터 각국 선수들은 바람 때문에 애를 먹으며 경기 중에 감독, 동료들과 끊임없이 상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한양궁협회는 바람 대비 훈련에 집중했다. 지난 6월 말에는 남한강변에 훈련 부지를 확보해 ‘강바람 특훈’을 진행했다. 변화무쌍한 강바람 한가운데서 활을 쏘는 경험을 쌓는다면 파리 현지에서 마주하게 될 강바람에도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단 계산이 있었다.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한국 양궁 남자팀 김우진은 취재진에 “다른 선수도 똑같이 (바람이) 불기 때문에 조건은 같다”고 했고, 홍승진 대표팀 총감독은 “컨디션은 한국이나 여기나 똑같다”고 말하며 자신감을 보였다.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앵발리드 경기장에서 열린 2024파리올림픽 양궁 여자 리커브 단체 결승 한국과 중국의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 전훈영(왼쪽부터), 임시현, 남수현이 시상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4.7.28. 파리=이상섭 기자

▶‘경험 부족’을 이기다 = 당초 이번 올림픽 여자 대표팀에는 ‘경험 부족’이란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여자팀 맏언니 전훈영(인천시청)과 막내 남수현(순천시청)은 올해 4월 처음으로 올림픽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다. 전훈영은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대표로 선발됐으나 코로나19로 올림픽이 1년 연기되면서 이듬해 다시 진행된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는 아픔을 겪었다. 남수현은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새내기다.

임시현(한국체대)은 지난해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3개를 땄지만 올림픽 경험은 없었다.

올 4월 대표팀 선발전 이후 열린 월드컵에서 세 차례 호흡을 맞춘 여자 대표팀은 1, 2차 대회에서 모두 중국에 패하자 ‘경험 부족’ 우려는 커졌다.

하지만 그간 입체적으로 진행한 ‘실전과 같은 훈련’을 묵묵하게 이어오며 실력을 다듬었다. 양궁협회는 파리 앵발리드 경기장을 그대로 본떠 경기장을 짓고 모의고사를 진행했다. 관중석에서 나올 온갖 소음에 익숙해지고자 K리그 경기가 펼쳐지는 축구장에서 훈련을 하기도 했다.

민수정 코치는 “양궁 대표팀은 주변에서 환경적으로도 많이 지원을 해 주지만 그만큼 무조건 해야 된다는 부담감이 있었을 것”이라며 “(부담감을) 넘어선 친구들이니 역시 국가대표구나 경기를 보며 다시 한 번 그런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임시현은 여자 단체전 경기 후 국내 취재진을 만나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10연패를 할 수 있어 영광이다. 우리 도전이 역사가 될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 역사를 (전)훈영 언니, (임)수현이랑 같이 할 수 있어 영광스럽고 행복하다”고 소감을 밝혔다.